'뉴 삼성' 이제 시작됐다

<중> 이 前회장의 빈자리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공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현재의 전문경영인들로는 5년후, 10년후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삼성 리더십 프로그램(SLP)에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

"지난 1년간은 그럭저럭 잘 버텨왔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그룹 내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전문경영인들은 많지만, 이 전 회장처럼 장기적인 안목으로 비전을 보여주는 인물은 없는 것 같다." (삼성 고위 관계자)

삼성그룹이 '경영쇄신안'을 발표한 지 1년째가 됐던 지난 4월22일. 삼성의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삼성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뿐이었다.

삼성에 대한 곱지 않은 외부 시선때문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이 전 회장의 경영 공백과 전략기획실 해체에 따른 컨트롤타워 부재로 구심점없이 흘러온 지난 1년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삼성전자계열사의 한 임원은 지난 1년을 정치에 빗대가며 "잃어버린 1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선방했다" vs "시행착오의 연속".. 삼성의 1년, 엇갈린 평가= 실제로 삼성의 지난 1년에 대한 평가는 재계에서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 전 회장 없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과 함께 '컨트롤타워 없는 삼성의 한계를 보여준 1년이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전 회장의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전략기획실 주도로 주도면밀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전략기획실 해체 후 꾸려진 투자조정위원회, 브랜드관리위원회 등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오너경영체제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막상 오너가 경영권을 가진 기업과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을 비교해보면 과감한 대형 투자 등의 의사결정에 있어 현격한 속도 차이를 보인다"면서 "이 전 회장을 잃은 지난 1년간의 삼성 모습은 이런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이 전 회장의 리더십 공백을 하루속히 메우는 것은 삼성의 당면 과제다. 하지만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 '회장-전략기획실(구조조정본부)-계열사 CEO'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해체 후 삼성은 지난 1년간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삼각편대'의 해체.. 장기화되고 있는 리더십 공백= 일각에선 이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중론이다. 피일차일 미뤄지는 삼성특검 3심(상고심)도 부담스럽다.

전략기획실이 부활돼야 한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의 전매특허였던 일사불란하고, 한 템포 빠른 의사결정 등 예전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전략기획실 역할을 수행할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경영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많지만, 삼성같은 큰 그룹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타워가 없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면서 "이해 관계가 상충되는 개별 계열사의 CEO들이 그룹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4월 발표한 '경영쇄신안' 내용 중 아직 해결하지 못한 '미완의 과제'를 시급히 해결하는 것도 숙제다. 삼성은 당장 추진하기 어려운 지주회사 및 순환출자 해소 문제의 경우 장기과제로 남겨놓았다.

◆ 새 성장동력으로 재무장.. 끝나지 않은 '삼성의 도전'= '뉴 삼성호(號)'는 신규 사업이 새로운 '돛'을 올림과 동시에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의 합작법인인 '삼성LED', 삼성전자의 중소형 LCD사업과 삼성SDI의 AM 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사업을 묶어 설립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 디지털카메라 전문업체인 '삼성디지털이미징' 등이 몇개월 사이 한꺼번에 '돛'을 올렸다. 이들 신설 법인이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꽤 많은 시일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지만,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성장동력으로 커 나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가 2분기 이후 얼마나 흑자 폭을 늘려갈 수 있을 지도 관심사다. 작년 4분기 1조원 가까운 적자를 냈던 삼성전자는 1분기에 1500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특히 반도체· LCD시황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2분기 이후 예전 삼성전자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장미빛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1조6000억원 가량 줄인 판매관리비(판관비)의 지출을 2분기에는 다시 20%대로 올릴 방침이다.

'뉴 삼성호'의 도약은 결국 이 전 회장의 리더십 공백을 얼마나 빨리 메우느냐에 달려있다는 게 삼성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유능한 CEO들이 계열사를 이끌고 있어 꾸준히 성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며 "하지만 그룹 차원의 도약을 이뤄내기 위한 의사결정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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