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영화 '투캅스' 시리즈의 각본을 쓰고 '손톱' '올가미' '세이 예스' 등을 연출한 김성홍 감독이 또 한 편의 스릴러 영화 '실종'으로 7년 만에 돌아왔다. 김 감독은 2002년 김명민·박용우·조재현 주연의 '스턴트맨'이 70% 촬영 후 중단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충무로를 떠나야 했다. 6년의 공백을 딛고 김성홍 감독이 다시 고향인 충무로로, 그것도 장기인 스릴러로 돌아온 것이다.

김성홍 감독은 2007년 보성 어부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다시 한 번 스릴러 장르의 시나리오를 써서 대기업 배급사들을 찾아다녔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독립영화 제작 방식이었다. 배우 출신 조선묵 제작자와 함께 뜻을 모은 김 감독은 현금 5억원과 현물투자 방식으로 4억 5000만원을 받아 힘겹게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50대의 연쇄살인마와 그의 마수에 걸려든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실종'은 잔인하지만 재미있다는 반응과 불쾌하고 역겹다는 반응이 팽팽히 대립하며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관객과 평단의 평가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벌써 극장수입만으로 제작비의 대부분을 회수했다. 6년 만에 독립영화 '실종'으로 돌아온 김성홍 감독을 아시아경제신문이 만났다.

- '스턴트맨' 이후 6년이나 쉬게 된 이유는?

▲ 서류상 내가 제작자로 돼 있는데 사실 투자자에게 내 명의를 빌려 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적인 책임에 내게 오더라. 내가 공인이니까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투자자들이 내게 책임을 물었다. 그러다 2년이 지났다. 법원 들락날락하는 과정에서 환멸도 느끼고 거의 탈진했다. 영화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보다는 인생이 목적 아닌가. 삶의 목표가 흐려졌다. 그러다 벌어놓은 돈도 없고 아는 거라곤 영화밖에 없으니 결국 영화를 해야겠다 싶어서 다시 하게 됐다.

- 출연 배우를 다시 불러 완성할 생각은 없나?

▲ 70% 정도 찍다가 중단됐는데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판권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 6년간 아무런 연출 제의도 없었나?

▲ 몇번 있었다. 케이블 채널 tvN 개국 프로그램으로 '블루엔젤'을 하자고 해서 제작사와 계약까지 했는데 서로 조건이 안 맞아 못 하게 됐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도 감독 계약까지 하고 준비했었는데 원작자와 분쟁이 생겨서 그것도 못 하게 됐다. 한때는 이렇게 오랜 시간 영화를 하지 못 한 게 원망스럽기까지 했는데 지나보니까 도움이 됐다 싶기도 하다.



- 충무로 선배로서 외부에서 보는 충무로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

▲ 한국 영화는 공격수만 몇 명 있고 미드필더는 무너진 채 수비수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되니 장르가 깊어지지 못하고 얇아진다. 요즘 충무로는 대부분 30대 감독이고 40대 감독이 일부 있을 뿐 미드필더라 할 수 있는 베테랑 감독들이 모두 사라졌다. 배급사들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만 만든다. 대기업 사람들의 코드에만 맞추면 100% 실패한다. 자본이 예술을 지배하면 예술은 죽는다.

- 6년을 쉰 사이 한국 영화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소감이 어떤가?

▲ 나는 작은 영화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꿈꿨던 모델은 할리우드 영화 '쏘우'다. '실종'도 그 단계로 가는 길에 있는 영화다. '실종'은 대기업 배급사로부터 모두 거절당한 영화다. '실종' 시나리오를 써서 정말 적은 예산을 들이밀었는데도 인정을 하려들지 않았다. 거북한 이야기라 해도 저예산으로 찍으면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기업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거절당해서 '워낭소리'처럼 독립영화로 간 거다. 원래는 작게 펼쳐서 길게 가고 싶었는데 초반에 극장을 많이 잡았다. 관객이 잘 안 드는 장르인 데다 거북한 내용인데 너무 크게 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 거북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면서 제작한 건가?

▲ 솔직한 심정이다. 아직 거북함 자체로 재미를 느끼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본다. 문화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을수록 스릴러 장르에 대한 수요가 많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어떻게 사기를 쳐야 상을 받고 평론가에게 칭찬받는지는 나도 안다. 그러나 평론가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면 죽기 때문에 안 만드는 것이다.

- 최근 한국 영화 중에는 스릴러가 많다.

▲ 스릴러는 감독들이 모두 찍고 싶어 하는 장르다. 그러나 감히 찍을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다. 금방 허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감독이 자신의 연출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가 스릴러라 생각한다. 감각이 떨어지면 바로 욕 먹는다. 긴장감을 1시간 40분간 이어가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실종'은 집중도가 높지만 보고 나면 욕을 한다. 모순이다.

- 영화를 찍을 때 어떤 과정이 제일 힘든가?

▲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이 가장 힘들다. 오히려 현장에선 편하다. 가끔 배우들이 무슨 장면을 찍는지도 모르고 찍는 경우도 있는데 상업 영화는 그러면 안 된다. 감독도, 배우도 정확히 알고 찍어야 한다. 나는 시나리오를 수정할 때도, 콘티를 짜고 다시 내용을 압축할 때도 장면만 자르는 게 아니라 드라마를 꼭 확인해서 연결시킨다. 나는 영화를 찍고 편집을 하면 미리 계산한 시간대로 나온다. 첫 번째 편집본이 2시간 넘은 적이 없다. 오히려 편집기사가 많이 찍어오라고 할 정도다. 내게 50억원을 주면 200억원짜리 영화를 찍을 자신이 있다.

- 충무로의 신인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요즘 신인 감독들은 너무 매끄럽게 찍는데 그러면 안 된다. 신인 감독은 유명하지 않은 배우를 써서 작은 영화를 먼저 연출해야 한다. 영화도 거칠고 실험적으로 찍어야 한다. 우리나라 신인 감독은 이미 능구렁이가 다 돼서 데뷔한다. 김기덕 감독처럼 데뷔해야 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볼 때 이 감독이 잘 될 거라 생각했다. 내게 충격을 주고 끊임 없이 자극을 주는 감독은 김기덕 감독이 유일하다.



- '실종'은 반전이 없는 스릴러다.

▲ 미스터리 스릴러는 문학적인 수법이다. 관객이 반전 하나를 보려고 영화를 보나? 결말 하나 때문에 영화를 보는 건 낭비다. 반전을 노리는 건 개성이 없다. 김성홍다운 영화를 찍고 싶었다. 내가 찍은 스릴러는 네 편 다 카메라 안에 피해자가 이미 들어가 있고 미스터리를 좇지 않았다. 인물들의 심리와 긴장감, 이들이 만들어가는 상황에 집중했지만 평론가들은 이런 걸 인정해주려 하지 않는다.

- '실종'은 복수의 방법에 있어서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 영화에 그런 메시지가 필요한가? 1시간 40분간 긴장감만 있으면 된다. 나는 사회평론가가 아니라 감독일 뿐이다. 난 주인공을 대신해서 의견을 제시하면 끝이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 극중 여주인공이 결말에 했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는 것이다. 엔딩 장면에 추자현이 "당신은 이해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찍어 놓고도 넣지 못했는데 나 역시 그런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피해를 당했던 사람만이 안다.

- 대역 재연 드라마 같은 영화라는 지적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 대역 재연 드라마면 몰입이 됐을 것 같나? 대역 재연 드라마는 어색하고 엉성하다. 거기에 해설까지 들어간다. '실종'에 관객들이 몰입했다면 그 자체로 대역 재연 드라마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픽션을 논픽션처럼 봤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면 잘못된 것 아닐까.

- 연쇄살인마 캐릭터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나?

▲ 소통불가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판곤(문성근 분)이라는 인물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한다. 나도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도 못 할 것이다. 이해하는 척하지 말라는 의미다. 찍을 때부터 문성근에게 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고 그 역시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 사기다. 그게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 추자현의 캐릭터가 평면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 리액션을 받아주는 배우가 무게감이 없으면 판곤 캐릭터는 죽는다. 추자현이 그런 점을 다 알고 출연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더 표현하려고 해도 장르 구조상 그렇게 하기 힘들었다. 캐릭터의 균형을 잡으려고 했는데 잘못 끼워넣으면 이야기 흐름이 느슨해질 것 같아서 못 한 부분이 있다. 드라마를 살리기 위해 아쉽지만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만든 것이다.

- 여자 주인공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추자현을 염두에 두고 썼다던데.

▲ 영화 후반부에 추자현이 우리에서 도망나왔을 때 연기를 보면 몰입하는 눈빛이 잘 보인다. 추자현은 숨어있는 보석 같은 배우다. 나중에 추자현을 위한 영화를 하나 만들어주고 싶을 정도다. '사생결단'에 출연한 추자현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신인 배우인 줄 알았는데 TV에서 제법 경력을 쌓은 배우더라. '실종'에서 정말 위험할 정도로 몸을 던져가며 연기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이런 배우는 처음 봤다.

- 문성근을 캐스팅한 이유는?

▲ 원래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애초에 판곤이라는 인물이 70대로 설정돼 있었는데 그래서는 영화를 만들 수가 없겠더라. 연령대를 낮추자는 의견이 나와서 50대로 낮췄더니 마땅한 배우가 없었다. 문성근 선배가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혹시 거절할까봐 걱정했다. 처음에는 답을 안 주더니 한 달쯤 지나서 다시 만나보자고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자신은 없지만 한번 해보자"고 하더라. 촬영하면서 문성근과 함께 출연하는 장면이 많은 전세홍에게 물어봤더니 "너무 무서워서 눈을 쳐다보지 못 하겠다"고 해서 안심했다.

- 미장센이 구식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 미장센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편이다. 앵글이 나쁘고 미장센이 조금 흐트러진다고 해도 그보다는 감정을 우선시 하려 한다. 미장센이 약한 대신에 강한 게 있겠지. 다음에 영화를 찍게 되면 미장센을 강조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도 있을 것 같다.

- 차기작 계획은 있나?

▲ 투자만 된다면 내 영화 중 '신장개업'의 속편을 찍고 싶다. 속편을 만들면 대중적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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