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명곡만 나열하고 내면은 외면
피터팬 메타포 발견하고도 심층까지 인도 못해

안톤 후쿠아 감독의 '마이클'은 마이클 잭슨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잭슨 파이브가 결성된 1960년대부터 전성기를 누린 1980년대까지를 조명하지만, 음악 전기 영화의 익숙한 공식을 답습한 탓에 인물의 내면을 피상적으로 훑는 데 그친다. 논쟁적이고 파격적이었던 '팝의 황제'를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로 축소해 버린다.


영화 '마이클' 스틸 컷.

영화 '마이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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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크박스에 갇힌 초상


마이클은 '보헤미안 랩소디'(2018) 이후 굳어진 장르 문법에 기대고 있다. 명곡을 연대기 순으로 배치하고 무대 퍼포먼스를 재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틀만으로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물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다. 그는 예술적 천재성만큼이나 복잡한 내면과 논쟁적인 삶을 지닌 스타였다. 인종 장벽을 허물고 대중문화를 재편한 동시에, 끊임없는 논란과 오해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크린 위에 펼쳐진 세계는 단편적이고 얕다. 형제들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어머니 캐서린 잭슨은 몇 차례 위로를 건네는 역할에 머문다. 마이클에게 열광하면서도 냉대했던 대중, 음악계 동료들, 흑인 예술가로서 마주한 장벽 역시 생략되거나 스쳐 지나간다.


시대와 충돌하며 만들어낸 창작의 궤적 대신 남는 것은 아버지 조 잭슨과의 갈등뿐이다. 이 역시 대립이 반복될 뿐, 인물의 입체성을 깊게 확장하지는 못한다. 특히 아버지를 해고하는 장면 이후에도 마이클의 내적 변화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마이클' 스틸 컷.

영화 '마이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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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마이클 역을 맡은 조카 자파르 잭슨은 외형적으로는 상당히 닮았지만, 삼촌의 고음을 재현하는 데 치중한 탓에 감정 표현의 폭이 제한적이다. 조 잭슨을 연기한 콜먼 도밍고 역시 과도한 특수분장 탓에 표정 변화가 단조롭게 느껴진다.


영화는 창작 과정 또한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히트곡이 탄생하는 배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스릴러' 뮤직비디오 촬영 장면 정도만 재현된다.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의 협업, 안무가들과의 작업, 녹음실에서의 시행착오 역시 단편적으로만 그려진다. 이면에 대한 탐구 없이 결과물만 나열하다 보니 영화는 결국 거대한 주크박스처럼 기능한다. 팬들에게는 향수를 안기겠지만, 한 인간의 굴곡진 삶과 예술적 여정을 전달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영화 '마이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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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비극 외면한 연출


후쿠아 감독은 마이클에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폭력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완벽한 안무와 보컬을 강요하며 채찍을 휘두른다. 절대적 공포는 천재성을 꽃피우는 동력이 되지만, 한 인간의 내면을 파괴하는 원인도 된다.


마이클은 어른이 돼서도 제임스 매튜 배리의 소설 '피터팬'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피터팬은 단순히 순수한 소년이 아니다. 기억을 잃은 채 영원히 현재에 갇힌 비극적 인물이다. 이 때문에 마이클이 이 책을 탐독하고 애완동물을 모으는 행위는 잔혹한 역사로부터 도피해 신화로 망명하려는 몸부림으로 읽힌다. 어른의 세계가 아버지가 지배하는 폭력의 무대라면, 네버랜드는 시간을 정지시켜 그 인과율을 끊으려는 방어기제인 셈이다.


영화는 마이클이 아버지를 해고하고 독립하는 과정을 자립의 완성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네버랜드는 해방의 공간이 아니다. 성장을 거부하며 자아를 유예한 성벽이자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길 잃은 아이들'의 영토다.


영화 '마이클' 스틸 컷.

영화 '마이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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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마이클이 조성한 네버랜드도 현실과의 충돌을 차단한 도피처였다. 놀이동산, 동물원 등 동화 같은 환경을 조성했으나 정작 주인은 성장이 멈춰 피폐해졌다. 피터팬이 영원한 현재에 갇혀 과거를 잊듯, 트라우마를 지우려다 경험의 축적이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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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건의 시나리오는 피터팬 메타포를 이 지점까지 인도하지 못한다. 후크 선장의 손목을 잘라 악어에게 던짐으로써 어른의 시간에 균열을 내는 행위 정도만 보여준다. 정지된 시간이 불러온 정신적 붕괴를 외면해서는 신화가 되려 했던 예술가의 심리적 투쟁을 전달할 수 없다. 그저 유족이 원했던 초상화에 그칠 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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