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칼럼]美-인도네시아 방위협력에 커지는 中 '말라카 딜레마'
美·인니 군사협력 중심, 말라카해협
中 원유 수입 90%가 들어오는 목줄
지난 13일 미국과 인도네시아가 발표한 '주요 국방협력 동반자 관계(MDCP)'는 국가 간 공식 성명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전한 표현들로 쓰였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과 샤프리 삼수딘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이 미국 펜타곤에서 서면 서명 후 발표한 성명에는 '역량강화' '교육' '훈련' '협력' 등의 단어가 나열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자국이 전통적으로 견지해 온 '자유롭고 능동적인(Bebas Aktif)' 외교 노선을 재차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에서 이번 미국과의 관계강화는 어디까지나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안심시키려 한 것이다.
인도네시아군의 현대화와 국방력 강화, 전문 군사 훈련과 교육 증진, 연합 훈련 및 작전 협력 발전 등 이번 미국과 인도네시아의 국방협력의 주요 골자만 보면 대단한 뉴스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 뉴스에는 숨겨진 사실들이 있다. 특히 '해상, 수중·자율 시스템'에 관한 내용을 살펴야 한다. 가장 지루해 보이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안에는 해당 시스템의 유지보수·수리·정비 지원 약속과 합동 특수부대 훈련 확대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를 풀어서 살펴보자면 양국 간 군사 협력 관계를 외교적으로 격상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를 활용함에 있어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 유용성을 확보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갑자기 미국의 동맹국이 됐다는 것은 아니다. 자카르타는 오랜 기간 '자유롭고 능동적인' 외교 정책을 강조해 왔다. 미국의 군용기 영공 통행에 대한 별도 제안도 여전히 검토하고 있다. 미국도 말라카 해협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동남아시아를 통한 접근이 압박을 받을 경우 중요해질 시스템, 기술, 그리고 국가 간 관계에 투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도 이번 협약 이후에도 여전히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균형 외교가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비동맹을 표방하면서도 한쪽 진영의 전략적 입지에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번 협약은 양국 간 관계를 격상하는 한 획을 그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말라카 해협이라는 강력한 지리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인도네시아의 협력 강화는 말라카 해협 운송을 통해 들어오는 해상 원유에 의존 중인 중국 입장에서 전략적 취약성 확대라는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중국이 말라카 해협에 대해 가진 전략적 취약성은 원유 수입 수치가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해 하루 116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그중 90% 이상이 파이프라인이 아닌 해상으로 운송됐다. 중국의 원유 및 콘덴세이트 수입량의 절반은 중동에서 오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도네시아와 말라카 해협은 중국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집계한 지난해 상반기 말라카 해협을 지나간 원유량은 하루 2320만배럴에 이른다.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29%에 해당한다. 이곳은 걸프만 산유국과 아시아의 원유 구매국들을 연결하는 최단 해상 경로이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수송 병목지점이라 할 수 있다.
말라카 해협 주변의 주요 대체 우회 항로로는 순다 해협과 롬복 해협이 있다. 그런데 이곳들도 모두 인도네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다. 중국은 말라카 해협에 대한 이러한 전략적 취약성에 대해 이미 20년 전 후진타오 주석 때부터 '말라카 딜레마'라 부르며 우려해왔다. 이후 중국도 나름 이러한 취약성을 완화하고자 노력은 해왔다. 중국은 현재 원유 파이프라인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미얀마와 연결한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파이프라인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원유 수입량이 전체 수입량과 대비해 적기에 해상 운송이 여전히 중요하다.
미국과 인도네시아의 국방 협력 관계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양국 간 관계는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앞으로 양국 군대가 매년 170회 이상의 합동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군사적 협력관계나 친밀감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 중인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작전상 더 유용한 관계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가 미국과 공식적인 동맹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도, 그러한 형태의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협정은 양국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략적 경쟁은 더 이상 영토만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무역, 그리고 군대가 통과하는 경로에 대한 통제권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줄리앙 샤이스 홍콩시립대 법학대학원 국제경제법 교수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How new US-Indonesia defence pact sharpens China's 'Malacca dilemma'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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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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