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인터뷰
외환위기 부도에서 해태제과 인수까지
"과자로 감동과 기쁨을 주겠다"는 철학

"3만6500일 중에 얼마나 사셨나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80)은 평소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100세 인생이라도 결국 3만6500일. 그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곧 인생의 성패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12일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이 영동세계국악엑스포 크라운해태 부스에서 설명을 듣고있다. [사진=크라운해태제과 제공]

12일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이 영동세계국악엑스포 크라운해태 부스에서 설명을 듣고있다. [사진=크라운해태제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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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회장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당시 귀하던 자전거를 드라이버로 직접 분해하며 기계의 원리를 파고들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조립에 성공했고, 기계에 대한 평생의 흥미가 생겼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아버지가 창업한 크라운제과에 입사했지만, 곧 독립해 산업기계 제조회사 한국자동기를 세웠다. "크라운 제과 맏아들"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15년간의 사업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1995년 그는 다시 크라운제과로 돌아와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돌아온 회사는 위기에 빠졌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자금난에 직면했고, 1998년 1월 결국 부도 처리됐다. 대표이사 취임 3년 만에 법원에 화의를 신청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윤 회장은 "반드시 회사를 살리겠다"며 협력업체를 직접 찾아다니며 호소했다.

윤 회장은 곧 결단을 내렸다. 300여개 제품 중 수익을 내지 못하는 230개를 과감히 정리하고, 70여개 핵심 품목 중심으로 제품군을 재편했다. 1999년에는 크라운제과의 상징과 같던 서울 묵동의 1만평 공장 부지를 매각했다. 이어 3개 공장을 추가로 정리해 400억원을 확보했고, 단기 부채를 막았다. 해외 제과업체와 손잡으며 매출 기반도 넓혔다. "크라운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끝에 나온 선택과 집중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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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회장은 기사회생의 문턱에서 또다시 모험을 택했다. 2005년 해태제과 인수전이었다. 당시 크라운제과 매출은 2897억원, 해태제과는 6187억원으로 두 배 이상 격차가 났다. 내부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기회는 지금뿐"이라며 밀어붙였다. 군인공제회의 자금을 끌어내 마침내 인수에 성공했다. 윤 회장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면서 "하지만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는 과자를 만들겠다는 마음은 변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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