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발언 '해석권' 장악하면 성공
이재명 공약 해석·의제화한 이준석
김문수, 논리 부재·준비 부족 드러내
몇몇 연구는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이 지지자를 결속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토론에서 일방적으로 밀린 대선후보는 대개 예후가 좋지 않다. 1960년 미국 대선에서 현직 부통령 리처드 닉슨이 무명의 존 F. 케네디에게 진 건 TV 토론의 열세 때문이었다. 2024년 6월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현직 대통령 조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에 무참히 깨졌다. 바이든은 한 달을 못 버티고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대선후보 토론의 가공할 만한 영향력은 '의제 설정'에서 나온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뉴스 미디어는 기계적 중립을 견지한다. 이미 형성된 후보 간 우열 구도를 뒤엎을 의제는 언론 기사가 아닌 TV 토론이 생성한다. 토론을 주도한 대선후보는 상대 후보의 말에 대한 '해석권'을 장악한다. 이어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상대 후보가 당선되어선 안 되는 이유'를 사회적 의제로 만든다. 이 의제가 선거판을 흔드는 것이다.
1차 토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로부터 "당연히 임금 감소 없이 주 4.5일제로 가야 하고요. 점진적으로 타협을 통해서…"라는 답을 받아 냈다. 이준석 후보는 "지금 확인하신 것처럼, 이재명 후보는 '어떻게'가 빠져있고 이렇게 하겠다는 말씀만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준석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말을 해석하고 규정하는 장면은 계속 나왔다. "정년 연장도 하고 젊은 세대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답할 거면 무슨 토론을 하자는 건지" "호텔 예약을 취소해도 돈이 돌면 경제가 산다는 식의 괴짜 경제학" "이런 식으로 외교에 대해 하루 자고 일어나면 답변이 바뀌는 모습을 보이면" "제2 경찰학교를 남원에도 아산에도 유치하겠다고 한다. 후보일 때도 양다리 공약을 이렇게 남발하는데" "(AI 공약과 관련해 '세부 내역은 검토를 거쳐 마련할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 계획도 없이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말 잘 들었다"
이재명 후보는 토론을 안정감 있게 잘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두 후보의 여유를 부리다 주요 공약이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이비 종교" 식으로 난타당한 듯 보이기도 한다. 언론사들은 토론 장면을 짧은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 등에 올렸다. 다른 선거 뉴스보다 훨씬 많은 조회 수가 나왔다. 이 중 그의 '호텔 경제학' 관련 발언과 '커피 원가 120원' 발언을 토론한 내용은 풍부한 사회적 담론을 수반했다. 양다리 공약 논란은 충청에서 쟁점화됐다. TV 토론을 통해 의제 설정이 이뤄지기 시작한 셈이다.
토론 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도는 상승했다. 그러나 그가 토론을 잘 준비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토론 상대를 계속 쳐다보면서 말해 시청자에겐 옆얼굴만 주로 보여줬다. 닉슨은 정면 카메라 대신 케네디만 보면서 말하다 호감을 얻지 못했다. 김 후보는 "지사가 부지사의 대북 송금 사건을 모를 수 있나?"고 이재명 후보를 공격했다. 이 후보는 "김 후보 캠프에서 정치 자금 수천만원씩 받을 때 모른다고 무혐의 받았느냐?"고 반박했다. 이런 반론은 예상됐지만 김 후보 측은 논파할 논리를 미리 마련하지 않은 듯했다. TV 토론에 성공한 대선후보는 '도덕적 우월성에 근거한 카리스마'를 시청자에게 드러낸다. 김 후보는 표현 방식과 내용에서 카리스마와 거리가 있었다. 1차 토론에 안주하는 건 심각한 오판일 것이다.
부자 몸조심하듯 임하는 후보나 철저히 준비하지 않는 후보에게 남은 TV 토론은 재앙이 될지 모른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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