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전 결혼, 망명 신청 서둘러...영주권자도 시민권 신청
대학선 유학생에 "트럼프 취임전 美 돌아올 것" 당부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을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미국 내 이민자들이 불안에 떨며 대비에 나섰다. 불법 이민자들은 망명 신청을, 미 시민권자와 교제 중인 이민자들은 결혼을 서두르고 있다. 이민 변호사와 관련 단체에도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내년 1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미 전역에서 이러한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간 불법 이민자를 범죄, 실업, 집값 상승 등의 주범으로 지목해온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시 불법, 합법을 통틀어 이민 규모를 대폭 줄이고, 취임 첫날부터 대규모 추방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해온 상태다.
미국에 불법으로 입국했거나 합법적으로 체류할 법적 근거가 미약한 이민자들은 서둘러 미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하고 있다. 망명을 허가받을 가능성이 작아도 일단 신청해 절차가 진행될 경우 미국에서 추방되지 않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시민권자와 교제 중인 이민자들은 결혼을 서둘러 영주권(그린카드) 신청 자격을 얻고자 하고 있다. 이미 영주권을 갖고 있는 이민자들도 가능한 한 빨리 시민권을 받으려고 한다. NYT에 따르면 미국 내에는 영주권이 있는 약 1300만명의 이민자가 거주 중이다. 또한 2022년 기준으로 불법체류자는 113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민 변호사들에게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오하이오주의 이민 변호사인 이나 시마코프스키는 "두려워해야 할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고, 영주권이 있어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몰려들고 있다"면서 "모두가 겁에 질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비영리단체가 주최한 이민 관련 모임에도 이민자들의 참석이 잇따르고 있다. NYT는 "이민자들이 트럼프가 예고한 광범위한 조치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휴스턴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30세 야네스 캄푸자노씨는 "대선 결과는 날 공황에 빠뜨렸고, 즉각 영구적 해결책을 찾게 만들었다"면서 미 시민권을 가진 약혼자와의 결혼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생후 3개월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온 그는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DACA) 수혜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DACA는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에 와 불법체류하는 이들에게 추방을 면하고 취업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은 1기 집권 당시에도 DACA 제도를 없애고자 했다. 캄푸자노씨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인 내달 결혼할 예정이라며 "내 (체류를 위한 법적)지위가 안정된 후에야 다시 숨 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플로리다에 거주 중인 세르히오 테란(36)씨는 이미 합법적인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지난 7월 시민권 신청 자격이 되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대선 결과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그가 서두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빨리하고 싶었다"며 "나는 모범적인 지역사회 구성원이다. 하지만 영주권이 있어도 여전히 추방될 수 있다. 시민권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훨씬 안전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추방 자체는 드물지 않다. 이주정책연구소(MPI)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1기에는 약 150만명이 추방됐다. 민주당 소속인 조 바이든 대통령도 비슷한 규모의 불법 체류자를 추방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첫 임기에만 300만명을 내보냈다. 다만 NYT는 미국이 1950년대 이후로 대규모로 한 번에 사람들을 추방한 적이 없다면서 이를 위해 거대한 구금 시설을 구축한 적도 없다고 짚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는 불법 체류자 대규모 공약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가 정책담당 백악관 부비서실장으로 발탁됐을 뿐 아니라, 실행을 위한 '국경차르' 자리도 만들어진 상태다. 트럼프 2기 '국경 차르'에 내정된 톰 호먼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은 우선적으로 범죄자, 추방 명령이 내려진 이민자들부터 추방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한 직장 불시 단속 등 다른 수단까지 동원해 불법체류자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했다. 불법 멕시코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실비아 캄포스(42)씨는 스페인어로 방송되는 라디오, TV,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어디에서든 이민 관련 정보로 폭격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대 세 자녀 중 두 명이 미국 시민인 그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들 역시 외국인 유학생과 불법 체류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조치를 조용하게 검토하고 있다. 지난 15일 관련 웨비나에는 1700명 이상의 대학 직원들이 참석했다. 행사 주최측 관계자인 미리엄 펠드블럼은 많은 기관이 DACA 수혜자에게 취업 비자를 후원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유학생이 고국을 찾는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대학들의 우려 중 하나다.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와 웨슬리언대 등 일부 대학은 모든 외국인 유학생, 교수진, 직원에게 여행 권고를 통해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 이전에 미국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고려하라고 촉구했다. 웨슬리언대학은 이메일에서 취임식 전날인 1월19일께 미국에 있는 것이 "재입국 시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2017년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한 직후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라의 미국 입국이 금지되면서 공황에서 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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