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쓰러진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책임지는 김정수군(17). 하나뿐인 가족인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각종 알바를 하지만 병원비와 월세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3년 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 극심한 생활고에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의 '간병 살인' 사건으로 영 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졌다. 영 케어러란 질병, 장애, 정신건강,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아동·청년을 말한다. 국내 영 케어러 규모는 약 10만명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해 실태조사를 한 후 올 7월부터 영 케어러 전담 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 울산, 충북, 전북에 거주하는 만 13세 이상 ~ 34세 이하 청년 2400명이 대상이다. 정부는 영 케어러 중 소득 기준(중위소득 100% 이내)을 확인해 1년에 자기 돌봄비 200만원을 지급한다. '돌봄 코디네이터'를 전담 배치해 가족돌봄청년을 관리한다.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미래마저 포기하는 청년이 적지 않다. 영 케어러를 어려운 가정 형편에 놓인 효심 깊은 청년으로 바라볼 뿐 영 케어러가 처한 버거운 삶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영국은 정수군과 같은 영 케어러를 위한 전담 매니저가 있다. 이 매니저는 영 케어러의 돌봄 역할, 자신을 위한 시간, 가정생활, 경제적 어려움, 평소 감정, 건강, 학업 등을 세심하게 파악한다. 그런 다음 영 케어러와 함께 가족 돌봄 계획을 수립하고, 전반적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방안도 제공한다. 영 케어러의 고립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온라인 플랫폼도 활성화돼 있다. 매주 11만원 상당의 보조금도 제공한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영 케어러 지원은 또래 집단과 같은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영 케어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버팀목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여러 국가의 경험과 착오를 배워가면서 국민 누구나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촘촘한 서비스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선 정확한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 아직 한국은 영 케어러의 전체 규모도 불명확한 상황이다. 정부는 첫 번째 실태조사에서 연령대를 만 13~34세로 정했다. 이로 인해 가족 돌봄을 하는 13세 미만의 아이들에 대한 정보는 없다.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으려면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법률 근거가 필요하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은 3년마다 청소년의 의식, 태도, 생활 등에 관한 실태조사의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반 청소년 복지 향상을 위한 조사다. 영 케어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별도의 실태조사 실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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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받는 대상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영케어러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는 게시물이 수두룩하다. 학교와 연계해 조사를 벌이는 방법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영 케어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결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잊힌 최전선'이 되지 않도록 사회 전반이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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