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실적을 공개한 많은 기업이 '성과급 몸살'을 앓고 있다.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위기, 길어진 인플레이션 속에서 호실적을 낸 만큼 그 과실은 구성원에게 고르게 돌아가야 마땅하겠다. 계열사나 부서에 따라 성과급이 달라 희비가 엇갈렸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트럭 시위가 등장하고 집단적인 노동조합 가입으로 이어져 몸살이 날 지경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삼성그룹 내 노사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 중 최대 규모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조합원 수가 한 달여 만에 66%가량 늘었다. 반도체 침체로 '성과급 0%'라는 충격에 빠진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을 중심으로 노조 가입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에는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등 4개 노조가 참여하는 삼성 그룹 초기업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은 직원들이 사비를 털어 성과급 제도 개선을 위한 트럭 시위에 나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측은 구체적 성과급 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한국전력은 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성과급 반납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반납한 돈은 희망퇴직 재원으로 쓰겠다는, 퇴직자를 위한 눈물겨운 '십시일반'이다. 허나 이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근본적으로 전기요금 현실화가 요원한 상황에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갖는다.
그간 성과급을 반납하거나 적게 받는 것은 경영진들이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왔다. 2021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성과급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자 연봉 반납을 선언한 바 있는데, 당시 하이닉스 사장이던 이석희 SK온 사장은 최근 취임 후 첫 일성으로 '연봉 20% 반납'을 밝혀 묘한 기시감을 들게 한다.
성과급을 두고 불만 표출을 넘어 집단행동까지 번지지만, 과거 노사 갈등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우선 직원들이 정치, 이념적 색을 벗어나 철저히 경제적 이익에 집중하고 있다. 또 조직화된 단체가 아닌 과장급 이하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전의 경우 지난달까지 1직급(본부장 및 각 처·실장)과 2직급(부장)의 반납 동의율은 각각 80%를 넘겼지만, 4직급 이하 젊은 직원들의 반납 동의율은 50%를 밑돌았다.
기업의 어려움을 본인의 어려움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는 점도 달라진 모습이다. '평생직장'에서 참고 견디면서 승진을 기대하기보다, 당장 경제적 손익을 따지겠다는 직장인이 늘면서 기업 문화가 달라지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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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밌는 점은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연봉 반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외환위기가 촉발된 1997년부터라는 것이다. 그 해 선경(현 SK), 기아, 한진, 진로 등 대기업들이 비상 경영을 선언하며, 경비를 줄이고자 임직원들에게 연봉을 반납하게 하거나 급여를 동결·삭감했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다. 다만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희생을 각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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