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테마섹 만들어 첨단산업에 민간투자 마중물 줘야”
상의·산업연구원, 한국산업 성장전략 재설계 세미나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판 테마섹(싱가포르 국부펀드·키워드 참조)을 만들어 첨단산업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단기간에 개발하기 어려워 고위험을 수반하는 첨단기술을 확보하려면 정부가 사업 리스크를 분담해 중장기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연구원은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산학연 전문가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산업 성장전략 재설계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 9월 경제계와 연구기관 민간전문가 80여명으로 구성한 ‘산업대전환포럼’이 정부에 전달한 ‘산업대전환 제언’과 관련해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정부 당국에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산업대전환포럼은 산업통상자원부 제안으로 작년 11월 출범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산업대전환 제언 중 하나인 국가 투자지주회사 설립을 강조하며 “테마섹과 같은 정부 전액 출자 투자지주회사는 첨단산업의 본질적 리스크를 분담해주면서 민간투자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EU) 핵심원자재법 등 주요국들이 기술·자원 무기화 산업전략을 펼치면서 공급망 불안이 가중되고 예측가능성은 떨어져 기업이 투자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 5년간(2018~2021년) 국내 투자 증가율은 외환 위기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인 0.2%에 머물렀다. 국내 제조업 외국인투자는 2018년 100억달러에서 2021년 50억달러로 3년 새 반토막 났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의 국내 국부펀드는 한국투자공사법을 적용받아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별도로 테마섹을 설치해 운영한다. 말하자면 우리나라도 테마섹 같은 투자회사를 만들어 국부펀드의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자현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은 “민간금융은 혁신기술 개발에 수반되는 고위험과 장기간 시간을 감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한국형 테마섹을 설립하면 임팩트가 큰 게임체인저 기술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선 산업연구원이 한국형 테마섹과 짝을 이룰 신비즈니스활성화방안을 발표했다. 최현경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본부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대체식품, 우주산업, 인공지능(AI)·로봇 등 신비즈니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최 본부장은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편입하거나 카테고리를 신설해야 한다”며 의료 행위를 기준으로 한 현 수가 체계에 관리 부분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전통 의료 서비스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으로 영역 간 경계가 파괴되며 2027년까지 연평균 19% 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견고한 이해관계로 인해 규제 체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단백질 등 대체 식품 시장도 글로벌 식량 위기, 지속가능한 소비문화 확산의 영향으로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2035년 전체 단백질 소비의 11% 차지)되나 국내에서는 제도 미비, 규제 불확실성으로 생태계 조성에 애를 먹고 있다. 최 본부장은 대체 식품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관련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새로운 재료 및 제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이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산업 성장전략 재설계 세미나'에 참석해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활성화 방안'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원본보기 아이콘해외에서는 우주 산업에 대한 민간의 참여와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2040년 우주 경제 규모가 약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국내 우주 산업은 정부 투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주기업 수는 2015년 300개에서 2021년 428개로 소폭 증가했다. 최 본부장은 공공 수요 확대를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연관 생태계를 조성하되 우주 역량이 확보된 분야에 대해서는 우선 민간에 기술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산업에 로봇을 집중 활용하면서 로봇 밀도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산업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2021년 기준 로봇 부품의 국산화율은 44.4%에 불과하다. 특히 감속기 서보(servo) 모터 등 구동부 수입 의존도는 80%에 육박한다. 서보 모터는 계속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한 만큼만 작동하는 제어 가능한 모터를 말한다. 최 본부장은 로봇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공 시장의 로봇 수용성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로봇 안정성 및 신뢰성 강화 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고 국가첨단 산업에 로봇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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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섹(Temasek)= 싱가포르 재무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투자 지주회사다. 1974년 설립됐다. 회사법을 적용받으며 정부에 세금도 낸다. 재무부는 주주권만 행사한다. 고위험·고수익을 지향한다. 테마섹의 지난 2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8%에 달한다. 사모펀드, 부동산 등 대체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특징이다. 비상장주식 비중은 52%로 절반 이상이다. 주로 자국 회사(27%, 이하 지난해 기준)에 투자한다. 테마섹의 총자산 규모는 약 639조원으로 세계 9위다. 한국투자공사가 운용하는 국내 국부펀드(약 220조원, 15위)의 3배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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