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던 중국에서 경기 침체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각종 경제 지표가 기대치를 밑돌자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앞다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골드만삭스는 6.0%에서 5.4%로, UBS는 5.7%에서 5.2%로, 노무라는 5.4%에서 5.1%로 하향조정했다.
중국 정부의 전격적인 리오프닝 베팅이 사실상 먹혀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부동산 침체 장기화, 미·중 갈등 심화, 지방 정부 부채 증가 등 시장에서 언급되는 대부분의 악재는 상당 기간 외부에 노출됐던 문제들이다. 중국 경기 침체를 둘러싼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중국인들이 돈 쓰는 것을 망설인다는 데에 있다. 제로코로나 3년 동안 싸매뒀던 현금이 위드코로나 전환으로 와르르 풀릴 것이라 짐작했던 정부의 계산은 완벽히 틀렸다. 이대로라면 중국이 소비 개선을 전제로 내놨던 '5% 안팎'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도 달성이 어려워질 지경이다.
그렇다면 인민들은 왜 지갑을 닫았을까. 맥락을 살펴볼 때, 최근의 저소비 현상은 나름의 자기방어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중국 정부는 철저히 모든 생산과 소비 활동을 규제했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시행한 재정지원을 직접적으로 시행하지 않았다. 동시에 민간 기업에 대한 압박과 규제는 계속됐다.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중국의 사교육 규제는 2021년 한 회사에서만 6만명의 정리해고를 초래했고, 게임 단속의 여파로 1만4000개의 회사가 문을 닫았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길들이기 작업도 멈추지 않았다. 청년실업률은 20.8%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이마저도 일주일에 1시간만 일한 아르바이트생을 모두 합산해 나온 숫자다.
이후 리창 총리가 전면에 나서 민간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시장과 인민들을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최근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10개월 만에 전격 인하했지만, 그 폭(0.1%포인트)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며 오히려 분위기를 냉각시켰다. 돈은 오히려 금, 옥과 같은 엉뚱한 투자시장을 키우고 있다.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기업 징둥닷컴이 글로벌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까지 불러들여 분위기를 띄웠던 '6·18 쇼핑 축제'는 판매 부진에 개최 이래 처음으로 실적이 공개되지 않았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한 40대 여성 중국인에게 "왜 중국인들이 요새 돈을 안 쓰느냐"고 물었더니 "언제 다시 코로나19 같은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에서 '코로나19'라는 단어를 사실상 '정부 규제'로 치환하는 것이 보다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 특히 그간의 규제는 시장경제 논리가 아닌 특정한 이념과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불안을 키운다. 중국인들은 더 이상 이 같은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인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저소비'를 통해 강요된 체제에 저항하고 있다. 이것이 이들이 자신의 안위를 보호하며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인 셈이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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