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미술관]②백자의 기상에서 배터리 산업을 엿보다
리움미술관 '군자지향' 전시 호평…백자에서 느껴지는 '군자'의 도리
청자보다 진보한 도예 기술…'달항아리' 재조명에 백자 인기
기술의 총체 배터리 산업과 맞닿아
"군자는 표범처럼 변혁하여 무늬가 더욱 화려하게 빛난다."
-주역(周易) 혁괘(革掛)
"군자는 곤궁함 속에서도 굳세지만, 소인은 궁하면 멋대로 군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리움 미술관의 '군자지향' 전시가 화제입니다. 전시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인간상 '군자'의 철학과 백자의 아름다움을 연결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도상봉·김환기·이응노의 '백자 사랑'
백자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백자 수집가가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해방 이후 수집가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대중적인 인기는 10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고려청자가 일본 무로마치 시대부터 수집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백자의 아름다움을 먼저 알아본 사람은 바로 간송 전형필, 도천 도상봉, 수화 김환기, 그리고 고암 이응노 화가 등입니다. 도상봉과 김환기는 작품에서도 백자 사랑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조선 백자의 특징으로 알고 있는 '소박함, 백색의 미, 자연스럽게 나온 일그러짐의 아름다움'은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진 평가입니다. 당시 미술평론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 백자의 가치를 재조명하면서 규정한 미학적 관점입니다.
백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김환기 화가 등을 거쳐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김환기 화가는 백자를 '굽이 좁다 못해 둥실 떠 있다"며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비유했습니다. 백자에서 모더니즘을 엿본 것입니다.
백자 가치 재해석…MZ세대에서도 인기
백자가 대중적으로 사랑받게 된 것은 2000년 이후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달항아리(백자대호)'가 한몫했습니다. 2000년 대영박물관 한국실 개관, 2005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백자 달항아리전', 2011년 문화재청의 '달항아리' 명칭 공식화 등 일련의 계기로 '달항아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달항아리를 소장한 것이 알려지면서 젊은 세대까지 달항아리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최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조선의 달항아리가 60억원에 낙찰되면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이런 관심을 반영합니다.
달항아리는 제작 방식도 독특합니다. 부피가 커서 상체와 하체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번조 과정 전에 합칩니다. 달항아리 중간 부분에 유독 두드러진 선이 보이기도 하는데, 고유의 제작 흔적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군자지향'에서 선보인 달항아리 중 개인 소장 작품을 좋아합니다. 마치 실제 달을 연상케 합니다. 매끄러운 순백의 색은 아니지만 번조(燔造)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 진짜 달과 흡사합니다. 좌우 균형, 볼륨감이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순백은 비어있는 색이자, 만 가지를 담은 색입니다. 빛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눈이 시리게 하얗고, 푸르스름한 빛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 마치 비를 머금은 구름처럼 회색빛을 담기도 합니다.
백자는 미학적 가치도 뛰어나지만, 기술적으로도 청자보다 한층 진보한 자기입니다. 먼저 철의 함량이 전혀 없이 깨끗하게 정선된 태토로 성형합니다. 이후 청자보다 높은 온도인 1250도 이상에서 번조됩니다.
배터리 산업, 기술 경쟁의 최전선…철화백자의 기상과 닮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공정 과정에서 조건을 기존보다 상향해 자기를 만드는 일은 일면 최첨단 제조업 공정인 배터리(이차전지) 산업과 비슷합니다. 배터리 시장은 시대를 거듭하며 혁신에 나선 백자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LG화학(배터리 사업부문)이 처음으로 이차전지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배터리'라고 부르는 전기자동차용 중대형 이차전지 개발은 2000년부터 본격화합니다.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삼원계(NCM,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양산하는 데 성공합니다. 삼원계 배터리는 곧 대세로 자리잡습니다. 가격은 비싸지만, 부피가 작고 주행거리가 길다는 장점 덕분입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생산에 주력합니다. 생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성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삼원계 원료 중 하나인 코발트는 청화백자의 푸른 빛을 표현하는 안료였습니다. 값비싼 수입품이라 청화백자는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지요.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유럽과 미국의 전기차 브랜드가 LFP 배터리를 주로 사용하는 중국의 중저가 전기차와 차별화한 것을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최근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에너지 밀도가 높은 LFP 배터리를 개발하면서 기술 경쟁은 격화하는 모습입니다. 니켈, 코발트 등 삼원계 원료 가격도 높아지면서 테슬라 등 전기차 기업들이 LFP 배터리 탑재를 확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에너지 밀도를 좌우하는 니켈 함량을 높여 출력을 올리고, 알루미늄을 적용해 안정성을 강화한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를 선보였습니다. 한편으로 배터리의 게임 체인저 '전고체 배터리' 개발도 진행 중입니다.
미·중 갈등 속에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배터리 주도권 경쟁의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을 거듭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모습에서 자기 변혁을 꾀하는 백자의 기상이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조선 중기에는 동화·철화백자가 꽃을 피웠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란으로 청화 안료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대체 재료인 철 안료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리움 미술관은 동화·철화백자의 전성기를 '조선은 곤경에 처해도 소인같이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결국 군자와 같이 형통한 셈'이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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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 등 어려워진 시장을 원망하지 않고 혁신을 거듭하는 국내 배터리 업계와도 비슷합니다. 국내 배터리도 달항아리처럼 전기차 업계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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