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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섭의 금융라이트]‘수류탄 투자'…휴지조각 된 코코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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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하면 상각…'코코본드'의 탄생
높은 수익률에 코코본드 투자 성행
위기 맞은 CS, 코코본드 전액 상각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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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의 여파로 크레디트스위스(CS)가 휘청거렸습니다. 주가가 장중 30% 이상 폭락하고 위기감이 고조됐는데 유비에스(UBS)가 인수의향을 밝히면서 파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게 된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채권시장은 여전히 혼돈입니다. CS가 코코본드를 전액 상각해버렸기 때문인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은행도 투자자도 좋아한 '코코본드'의 매력

코코본드는 ‘조건부자본증권(contingent convertible bond)’을 부르는 별칭입니다. 채권의 일종인데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미리 정해둔 요건을 충족하면 원금을 상각하거나 주식(보통주)으로 바뀝니다. 미리 정한 요건이란 파산이나 이에 걸맞은 위험이 닥쳤을 때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은행이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면 채권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채권인 거죠.

왜 이런 채권이 만들어졌을까요?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진 은행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습니다. 왜 민간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살려야 하느냐는 비판이 컸죠. 그래서 코코본드가 탄생했습니다. 은행이 무너질 거 같으면 국민의 세금이 아니라 채권 투자자들의 돈으로 손실을 보전하라는 뜻에서요.


코코본드는 은행과 투자자 모두에게 윈윈(win-win)이었습니다. 코코본드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합니다. 코코본드도 엄밀히 따지면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발행하고 돈을 빌려오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원금을 상각해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죠. 은행 입장에서는 코코본드를 많이 발행할수록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지고 더 건전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겁니다.


부담도 없습니다. 금융사가 돈을 모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주식을 많이 발행해 돈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죠. 주식을 많이 발행할수록 경영자들의 지분율이 줄어들거든요. 주가도 내려가고요. 코코본드는 채권이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죠.

투자자들도 코코본드를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았거든요. 위기가 닥치면 자동으로 휴지 조각이 되는 채권인데 당연히 일반채권보다 더 많은 이자를 줘야겠죠. 실제 코로나19가 시작됐던 2020년 3월 일부 글로벌은행들의 코코본드 수익률이 15%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원금손실이 우려스럽지만 투자자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은행이 설마 망하겠어?’라고 생각한 거죠.


이런 특징 탓에 코코본드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류탄이 부착된 투자(investment with a hand grenade attached)’죠. 안전핀도 있으니 수류탄은 폭발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진행하는 투자란 뜻입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수류탄이 터지면 크게 다치는 것처럼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금융당국이 ‘자신도 모르는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터져버린 수류탄…채권시장·은행 '흔들'

그리고 수류탄이 터져버렸습니다. 위기를 맞은 CS가 코코본드를 전액 상각해버린 겁니다. CS 코코본드에는 ‘파산하거나 부채의 중요한 금액을 지불할 수 없거나 기타 유사한 상황에 부닥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공 부문의 자본 지원이 있을 경우’에 상각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CS는 조건이 충족됐다면서 160억스위스프랑 규모의 코코본드를 상각했습니다. 한국 돈으로 약 22조5000억원에 달하는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된 거죠. 2017년 스페인 포풀라르은행 파산 때 소각됐던 코코본드 규모 13억5000만유로(약 1조9000억원)의 10배가 넘습니다.


문제는 손실 부담원칙이 일그러졌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무너지면 주주→채권 보유자 순서로 손실을 봅니다. 그런데 CS 주주들은 22.48주당 인수합병되는 UBS 회사 주식 1주를 받습니다. 채권자들은 빈털터리가 됐는데 먼저 책임을 져야 할 주주들이 오히려 보상을 받게 된 셈이죠. 유럽중앙은행(ECB)가 지난 20일 공동성명을 내고 “주식이 첫 번째로 손실을 흡수하는 상품”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스위스는 EU 회원국도 아니라서 이런 의무를 지켜야 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에 CS 투자자들이 법적 대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CS 코코본드에 투자했던 이들이 스위스와 미국, 영국 변호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은행들의 코코본드도 위험한 거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코본드를 많이 발행한 은행들이 도마 위에 올랐죠. 지난 24일 독일 최대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프랑크푸르트증시에서 장중 14% 이상 폭락했습니다. 한때 코코본드 금리가 23%까지 올라갔고요. 미국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의 경우 주가가 이달 초 대비 10.76% 떨어지기도 했고요.


다만 코코본드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지난 20일 기준 국내 은행권의 코코본드 발행액은 31조5000억원인데, 전체 자본 250조원과 비교하면 비중은 미미한 편입니다. 또 CS처럼 보통주보다 먼저 상각할 수 있다는 조건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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