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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품명가]②전기차 LG 없으면 안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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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서 찬밥 신세였던 배터리 사업
故구본무 회장 "CEO 평가서 빼주겠다" 결단
북미중심 고성장·사상 최대 실적 성과

[아시아경제 최서윤 기자] “계속 적자 나는데 이거 못하겠습니다.”

역대 LG 화학 사장 2명이 구본무 당시 LG그룹 회장을 찾아가 말했다. 사업부 실적이 본인 성과로 직결되는 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서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전지사업을 끌고 가는 게 부담이었다. 구 회장은 오너만이 줄 수 있는 답을 내줬다. “전지사업 실적을 CEO 평가에서 빼주겠다. 적자 나도 괜찮으니 사업을 잘 키워봐라.”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이야기다. 작년 1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린 배터리 세계 2위 LG에너지솔루션 이 그룹 찬밥 대접을 받던 시절 벌어진 일이다.


LG그룹의 배터리 사업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 회장은 당시 영국 출장에서 충전해서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이차전지를 접하고 사업성을 확신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차전지 개발을 검토하다 1995년 본격적인 독자 개발을 시작했다. 동시에 100억원을 투입해 시험공장 건설도 추진했다.

2002년 10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LG]

2002년 10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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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한국보다 먼저 개발에 성공한 일본에서의 정보 수집이 필수였지만, 당시 일본은 국가적으로 기술 유출을 금지하고 있어 정보를 구할 길이 없었다. 연구진이 묘수를 짰다. 방향을 살짝 틀어 일본 장비업체에 접근해보기로 한 것. 이들을 설득해 어떤 장비를 제조회사에 납품했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해 가면서 개발해 나갔다.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1997년 11월 개발 1년6개월만에 일본 제품보다 뛰어난 세계 최고 용량·최경량 시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이듬해 국내 최초로 첫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일본업체들이 10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양산에 성공한 일을 LG화학은 3년만에 이뤘다.


소형 배터리 대량 생산에는 성공했지만, 이는 일본보다 거의 10년이 뒤처진 상태였다. 구 회장은 전기차에 사용되는 중대형 배터리에선 일본을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시장의 잠재성을 인지하고 2000년부터 일찌감치 전기차용 이차전지 연구와 북미 시장 개척을 위해 미국에 연구법인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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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이 발목을 잡았다. 그룹 내부에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수조원을 투자했지만 정작 영업이익은 수백억원에 그쳤다. 2005년엔 2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 목록에서 한국 기업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차를 모두 배제하는 등의 대외 악조건도 이겨내야 했다. 그때도 배터리 사업을 다잡은 게 구 회장이었다. “배터리 사업이 미래 성장동력”이라며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연구에 집중하면 반드시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숱한 고비를 버텨낸 구 회장의 뚝심은 최근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면서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2020년 12월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약 25조6000억원에 영업이익 약 1조2000억원을 거뒀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다. 북미 사업 중심으로 고성장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수주잔고 385조원 가운데 북미 비중이 70%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없으면 북미 전기차가 안 굴러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올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 시행을 앞둔 미국 전기차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가 기대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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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유럽 스텔란티스, 일본 혼다까지 사로잡은 비결은 기술력이다. 특허 수는 작년 3분기 말 누적 기준 2만5825건(국내 8447건, 해외 1만7378건)이다. 배터리 세계 1위인 중국 CATL보다 5배 많다. LG에너지솔루션 특허 없이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1992년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이차전지 연구에 뛰어든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10년간 연구개발(R&D)에 5조3000억원을 쏟았다. 미국, 유럽, 중국 등에 포진한 R&D 인력은 3300여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시장 성장에 힘입어 LG그룹에서 가장 잘나가는 계열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성과급도, 시가총액도 그룹 내 1위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측근이자 구본무 회장 시절 중용된 권영수 부회장이 이끄는 만큼 그룹 내 입지도 탄탄하다. 모회사 LG화학 전체 영업이익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 비중은 40%로, 전년(15%)보다 2.6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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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2022년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전년 대비 33% 성장한 890GWh에 이를 전망”이라며 “고성장하는 북미 시장에 집중하고 리튬황 전고체 등 다양한 미래 기술 개발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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