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성화, "문인(文人) 안중근에 집중했다"
안중근 마지막 1년 그린 윤제균 감독의 '영웅' 주연배우
뮤지컬·영화서 14년째 안중근 연기 맡아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유해를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의거가 있은 지 100년이 넘었지만, 정부는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안 의사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 위치조차 찾지 못했다. 2008년 남북 정부는 광복 이후 처음으로 유해 공동 발굴에 나섰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성화(47)는 "한일 간 정치적인 부분이라 조심스럽다"면서도 "유해가 하루빨리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그분의 정신과 철학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말미 삽입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글이 사라지는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웅'(감독 윤제균)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다. 2009년 동명 뮤지컬 초연을 시작으로 14년간 안중근 의사를 연기해온 정성화가 다시 한번 대한제국 독립군 대장 안중근 역을 맡았다.
오랜 기간 안중근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온 그는 뮤지컬 첫 공연에 앞서 거사가 이루어졌던 하얼빈역을 방문했다. 정성화는 "2009년 뮤지컬에 캐스팅되자마자 제작사에서 대뜸 내 여권을 달라고 했다. 그저 '해외에 가겠구나' 좋아하면서 중국에 갔다"고 떠올렸다. 이어 "안중근 의사께서 돌아가신 뤼순 감독과 하얼빈역에 갔다. 간단히 사진을 촬영한 후 안 의사께서 걸었음 직한 길을 걸었다. 우리가 모두 기억해야 할 장소구나, 혼자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한 배역을 오래 연기하면 그 인물과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14년간 안중근 의사로 살아온 정성화도 마찬가지. '영웅' 포스터가 공개되자 정성화는 동료 연기자들로부터 "정말 네가 맞냐"고 묻는 연락이 쇄도했다고 전했다.
"닮았다는 말은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럽죠. 인생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요. 포스터를 찍을 때 안중근 의사가 사진을 찍기 전에 상황이 어땠을까 골똘히 생각했어요. 누군가 완력으로 앉히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팔을 모았겠죠. 감정에 집중했습니다. 외형적 노력도 필수였습니다. 배역을 위해 체중을 14kg 감량했어요. 조금 먹고 뛰면서 살을 뺐어요. 제 노력보다도 분장 기술의 발전 덕이죠. 충무로에 훌륭한 스태프가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웃음)"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창작 뮤지컬 최초로 지식재산권(IP)을 개발해 영화로 완성한 '영웅' 주인공으로서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뮤지컬 영화 시장을 소개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뮤지컬 산업은 시장이 한정적이다. 능력 있는 좋은 배우들이 관객에게 소개되길 바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에 뮤지컬 영화는 있었지만,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은 '영웅'이 처음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캣츠' 등을 영화화한 할리우드 제작진이 보고 '너네도 잘하는구나' 인정받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노래를 잘하는 배우는 많다. 뮤지컬 무대에서 탄탄한 개인기를 갖춘 배우들도 많다. 그러나 정성화가 아닌 다른 배우가 안중근 의사를 연기했다면 전혀 달랐을 것이다. 무대와 매체의 차이를 이해하면서도 안중근 의사의 서사와 넘버 모두를 잘 이해하는 배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탄탄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안중근의 신념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그는 "무인(武人)이 아니라 문인(文人) 안중근의 모습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학교를 설립할 만큼 교육에 힘쓰셨고, 국채보상운동을 펼쳤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감독에서 집필한 저서들을 보면 지적, 철학적 수준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기의 순간 냉철하고 차분하지만, 회령전투에서는 일본군을 살렸다가 동지들을 힘들게 한 뼈아픈 경험을 한 인간적인 면모도 있다"고 했다.
정성화는 1994년 SBS 3기 공채 개그맨으로 입문해 희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를 배우로 주목하기 시작한 건 '카이스트'(1998)를 통해서다. 이후 드라마 '동물원 사람들'(2002) '흥부네 박 터졌네'(2003), 영화 '김종욱 찾기'(2010) '댄싱퀸'(2012)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스플릿'(2016),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레미제라블' '레베카'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해왔다. 어엿한 주연배우지만 영화 주연은 '영웅'이 처음이다.
무대와 미디어 연기에 능하다는 점이 주효했다. 안중근 의사의 서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영화적 연기가 가능했다. 정성화는 "뮤지컬 배우가 영화 작업을 하면서 연극 발성 때문에 애를 먹곤 한다. 저는 무대 경험이 있으면서도 드라마, 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 도움 됐다"고 어필했다. 이어 "작업하면서 절제하는 법도 배웠다"고 말했다.
"'영웅' 영화화 소식을 들었을 때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고 싶었지만, 훌륭한 가창력을 지닌 주연급 배우들이 많아서 기대하지 않았어요. 제가 맡게 될 확률은 6~7%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죠. 그 가능성이 통했네요. 윤제균 감독님께서 처음부터 마음속에 저를 낙점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 좀 일찍 말해주시지.(웃음)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느꼈습니다. 촬영 때는 두렵기도 했어요. 스크린에서 조단역을 맡아온 저 같은 사람에게 주연을 맡기다니,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당하면서 맡겨주신 거잖아요. 누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한발 한발 가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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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좋은 감독' '좋은 배우'로 유명한 윤제균·정성화가 만나 좋은 영화 '영웅'이 탄생했다. 정성화는 "윤 감독은 카메라 앞에서 잘 놀게 해주는 좋은 감독"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줘서 명장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영화 주연을 윤 감독과 함께한 건 행운이었다. 귀가 열려있는 분이고 내 의견도 거침없이 청취했다. 멋진 감독과 작업해서 즐거웠다. 운이 좋고 복 받은 배우라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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