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줄지 않는 산재사망…중대재해법 제 역할하려면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청춘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3주가 흐르고 있다. 너무나도 황망하고 안타까운 소식이었던 만큼 사회적 파장은 여전하다.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비극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뇌리에 남아 오래도록 일상을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비극의 현장은 또 있다. 2030 근로자의 사망사고가 되풀이되는 제빵 공장과 건설 현장, 철도 선로 위. 바로 산업 현장이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생존을 거는 사회적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광주 산단에서 20대 근로자가 철제 코일을 옮기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5일에는 의왕시 오봉역에서 화물열차 연결 작업을 하던 30대 근로자가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5일에는 제빵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소스 혼합 기계에 빨려 들어가 숨졌고, 지난달 10일엔 인천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외벽 보수 작업을 하던 30대 근로자가 추락하는 참변을 당했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지도 벌써 10개월째다. 사업장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처벌을 강화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달까지 이 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모두 179건이다. 고용부는 지금까지 25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 가운데 4건은 기소, 1건은 불기소하며 처분이 이뤄지고 있다. 처분 결과를 놓고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 현장은 더 안전해졌을까. 최근 고용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올 1∼9월 483건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가 발생해 510명이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된 이후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가 작년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실효성을 따지기에는 이르지만,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이 사망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줄이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줬는가에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법 자체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세척제 사용에 따른 직업성 급성중독자 16명이 발생해 최초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에어컨 부품 제조회사는 지난달 법원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규정 내용이 모호하고 불명확해 자의적인 법 해석이나 법 집행이 배제된다고 보기 어려워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등 위헌성을 들었다.
이러한 문제는 법 시행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작년 10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준수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응답 기업 47.1%가 "의무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법의 모호성 때문에 법을 준수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일찌감치 예견한 셈이다.
경영계와 법조계를 시작으로 법 개정의 목소리는 여전한데 정부나 국회에서 논의는 흐지부지 양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누구나 안심하며 일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공개 시점은 당초 10월에서 연말로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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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논란이 되는 법 조항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개정보다는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와 노사 모두 사회적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되돌아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높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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