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피해 유족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
엽사 총격으로 사망...피고인 금고 1년 8월
유족 측, 진상 규명위해 발 벗고 나서
수사기관 무시당하기도
유족들 정신적 피해 상당
멧돼지로 오인 받아 엽사의 총격으로 사망한 택시기사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관련 기관들을 찾아다녔다. 도중에 수사기관의 '무시'를 받기도 했다. 현재 유족들은 정신적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사진제공=서울 은평소방서
[아시아경제 오규민 기자] 한 70대 택시기사가 도심에서 총격으로 쓰러졌다. 그는 도로에서 5m 떨어진 등산로 주변에서 급하게 소변을 보고 있었다. 멧돼지를 사냥 중이던 엽사가 그를 멧돼지로 오인해 엽총을 발사했는데 그 1발에 맞았다. 119구급대가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조치했지만 이미 그는 심정지 상태였다. 저녁을 먹고 있던 가족들은 구급대의 연락을 받고 그가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1발의 총알이 복부를 관통하며 그의 장기들이 모두 손상됐다. 그렇게 그는 5시간만에 과다출혈로 72년의 생을 마감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급하게 장례 준비를 하던 유족들에게 한 남성이 찾아왔다. 엽사의 아들이었다. 갑작스레 무릎을 꿇고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그의 사과를 받을 여유가 없어 ‘돌아가라’는 취지로 말했다. 한 언론사에서도 유족들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은 한사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자신들의 신상이 공개되는 게 우려스러웠다.
극도로 노출을 꺼렸던 유족들이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이 사건 1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피고인은 금고 1년 8월을 선고 받았다. 이에 유족들은 “너무나 어이없고 분통하다”며 인터뷰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유족들이 뛰어다니며 ‘조사’...수사기관에 무시당하기도
그동안 유족들은 망인(택시기사)의 사망 이유에 대해 조사를 했다. 경찰과 검찰이 해야 하는 일을 도맡아 한 것이다. 망인의 사위는 6개월 동안 사건과 얽힌 장소들을 전전했다. 엽사가 총을 불출한 서울 종로경찰서 평창파출소를 찾거나, 멧돼지 수렵 허가를 해준 은평구청, 사건 현장 등을 방문했다.
결국 유족들은 엽사가 제대로 된 수렵 신고 없이 총을 불출해 멧돼지 사냥에 나섰으며 엽사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유족 측에 따르면 자신들을 ‘보듬어’ 준 기관은 없었다. 이들은 수사기관들이 형식적이고 사무적으로 사건을 다뤄 이 같은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수사과정에서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사건 당시 현장 주변 가로등이 꺼져 있었다고 보도되면서 이들은 사건 담당 경찰관에게 따져 물었다. 함께 현장을 가서 살피고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경찰관은 이후 이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연락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대로 된 판결’이 내려지길 기대했다. 재판 도중 양형조사 과정에서 조사관이 이들을 불렀다. 유족 측은 자신들이 밝혀낸 위 사실들을 소상히 적어 의견서를 제출했다.
1심 판결에 충격...유족들 정신적 피해 받아
하지만 유족들은 판결에 다시 한 번 상처를 받았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주어진 형벌은 금고 1년 8월이었다. 해당 죄는 5년 이하의 금고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다. 법원은 엽사의 주의의무 위반 행위가 가중처벌 요소인 ‘중한 정도의 주의의무 위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유족 측은 “구형(금고 4년)만큼 이라도 나왔어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현재 유족들은 다양한 피해를 겪고 있다. 망인의 부인은 입관식이 있던 날 정신이 혼미하고 졸도를 반복하다 일시적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도 했다. 이후 안정을 찾았지만 공황장애 판정을 받아 약을 먹기 않고는 수면을 취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장녀의 경우 망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돼 심장 부위가 부어 정상적인 호흡을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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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사건 기소를 담당한 서울서부지검은 판결 이틀 후인 지난 21일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정금영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피해자 측과 합의하지 않은 점,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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