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죽은 친구 나오자…선감학원 피해자들 눈물을 못 멈췄다
20일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진실규명 결과 발표
여전히 정신적·경제적 어려움 겪는 피해자들
"피해자들 늙고 있어. 빠른 사과·지원 필요해"
20일 진실화해위원회의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안영호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 /제공=진실화해위원회
[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여명구' 1968년 7월 선감학원에 입소했던 10살 아이였다. 원아대장 기록은 1972년 5월31일 무단이탈 제적 조치에서 멈춰있다. 하지만 실제론 선감학원을 탈출해 바다를 건너다가 죽은 것으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50년 만에 드러난 진실이었다.
20일 진실화해위의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기자회견'에서 여명구의 이름이 나오자 안영호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안씨와 여명구는 초등학교 친구 사이였다. 백발노인이 돼서야 초등학교 친구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진 것이다.
안씨는 "지하철 타고 기자회견장을 올 때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친구를 이렇게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당시 친구가 선감학원에서 탈출을 시도했는지도 몰랐다"며 "아무리 친구라도 말을 함부로 해 선생님 귀에 탈출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들어가면 끔찍한 일이 생겼다. 친구끼리 믿지 못하는 곳이 선감학원이었다"고 전했다.
전날 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강점기부터 1982년 독재정권까지 운영된 아동수용시설로 인권 유린이 자행됐던 곳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는 4689건의 아동 수용기록을 확인했으며 아동 피해 사망자 5명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선감학원 시설 내에서 노동 착취, 폭력, 성폭력 등 인권 유린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났고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경기도에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선감학원이 문을 닫은지 40년이 됐지만 피해자들은 아직 고통 속에 머물러 있다. 지난 5월 만났던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한일영씨, 오광석씨, 강성근씨는 모두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오씨는 "먹고 살기 바빠서 트라우마를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졌는데 이것이 트라우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누군가 길에서 쳐다보면 괜히 나를 욕하는 것 같고 피해의식도 생겼다"고 말했다. 강씨 역시 "60대 중반의 나이가 됐는데 아직도 선감학원에 있는 악몽을 꾼다"며 "당시 나를 때리기 위해 곡괭이에서 자루를 빼내던 '쿵쿵'거리던 소리가 꿈속에서 들린다"고 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씨는 "한 직장을 계속 다니기 어려웠다"며 "좋지 못한 일들에 상해버린 인상이 별로라며 아파트 관리직 취직에 실패했다. 당시 어떻게든 열심히 하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나뿐만 아니라 선감학원 피해자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선감학원 피해자 조사대상 가운데 21.4%(6명)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지원을 약속했지만 피해자들은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소연했다. 김영배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이렇게 김 지사가 챙겨줘서 고맙지만 우리는 늙었다"며 "올해도 생활고에 극단적 선택을 한 선감학원 피해자가 1명 있다. 빠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씨 역시 "경기도의 사과를 받았지만 아직 국가에게선 받지 못했다. 국가의 사과도 있어야 한다"며 "향후 경기도가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지원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경기도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여러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도는 ▲피해자 생활 지원 ▲피해자 트라우마 해소 및 의료서비스 지원 ▲희생자 추모 및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선감학원 묘역을 정비해 추모공간을 조성하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배·보상 특별법이 마련되도록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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