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본점 없던 일본법인이 해방 전 소유한 재산은 귀속재산 될 수 있어"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 해석 기준 처음 내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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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해방 전 일본법인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 대한민국에 귀속될 지 여부는 해당 법인의 본점이나 주된 사무소가 국내에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해당 부동산이 토지대장상 일본법인의 소유라는 이유로 귀속재산에서 제외된다고 판단,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저수지 제방(둑)으로 사용되고 있는 A 토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A 토지에 대해서는 등기부가 없었고, 토지대장에는 1920년 5월 14일 일본법인인 동산농사 주식회사에게 토지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해방 후 광산군이 저수지와 A 토지를 관리했지만 1977년 농촌근대화촉진법에 따라 인근 농지개량조합으로 관리권이 다시 이관됐다. 이후 농지개량조합이 갖고 있던 모든 권리 의무는 제도 변화에 따라 농업기반공사에 포괄승계됐고, 농업기반공사는 그 명칭이 한국농촌공사, 한국농어촌공사로 차례로 바뀌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2020년 8월 정부를 상대로 A 토지의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소송을 냈다.


해당 토지는 정부가 농지개혁법에 따라 원시취득한 것인데, 1977년 6월 농촌근대화촉진법에 따라 소유권을 포함한 A 토지의 권리의무가 농지개량조합에 포괄승계됐고, 이후 다시 한국농어촌공사에 포괄승계됐기 때문에 정부가 소유권을 이전해줄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한국농어촌공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 당시 농지개혁법 제5조 1호 가목은 '법령급 조약에 의하여 몰수 또는 국유로 된 농지'가 정부에 귀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원고인 한국농어촌공사는 피고 대한민국이 이 규정에 의해 A 토지를 원시취득했다고 주장할 뿐, 어떤 법령급 조약에 의해 대한민국에 귀속됐는지 구체적인 주장·입증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한국농어촌공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했흠을 전제로 한 주장인데, 한국농어촌공사의 주장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1심 재판에서 승소한 뒤 대한민국은 2021년 3월 23일 광주 광산구의 요청에 따라 A 토지가 일본법인 명의의 미등기 토지로써 귀속재산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2심 재판부는 판결이유는 달랐지만, 1심 판결의 결론은 정당하다며 한국농어촌공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은 '단기 4278년(1945년) 8월 9일 이전에 한국 내에서 설립되어 그 주식 또는 지분이 일본기관, 그 국민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되었던 영리법인 또는 조합 기타에 대하여서는 그 주식 또는 지분이 귀속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정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 때문에 1945년 8월 9일 이전에 한국 내에서 설립되어 그 주식 또는 지분이 일본기관, 그 국민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됐던 법인이나 조합의 경우 귀속 대상은 법인의 주식이나 조합의 지분이지, 법인이나 조합이 소유하던 재산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A 토지 자체는 귀속재산이 될 수 없고 토지대장상 소유자로 등재된 일본법인인 동산농사가 여전히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는 무효"라며 "따라서 피고가 이 사건 소유권을 취득했음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토지대장상 소유 명의자가 일본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속재산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고, 본점이나 주된 사무소가 한국에 있었는지를 따져보고 판단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동산농사 주식회사는 국내가 아닌 일본 동경에 본점을 뒀던 법인이다.


재판부는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에 따라 1945년 8월 9일 이전에 국내에서 설립돼 주식 또는 지분이 일본기관 또는 국민 등에 소속됐던 영리법인 소유 재산은 귀속재산에서 제외되고 그 주식 또는 지분이 귀속재산이 되지만, 여기에서 '국내에서 설립된 영리법인'이란 국내에 주된 사무소 또는 본점을 두고 설립된 법인을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원심으로서는 동산농사가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리·판단해 그에 따라 위 조항의 적용 여부를 가렸어야 했는데 동산농사가 일본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에 관해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을 적용해 이 사건 토지가 귀속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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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3항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설시함으로써, 해방 전부터 일본법인이 소유했던 국내에 있는 재산이 귀속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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