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의 법조스토리]대법원-헌재 '한정위헌' 갈등…국회 해결 나서야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법률에 대한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싸고 25년 만에 다시 맞붙었다. 지난 1997년 헌법소원 대상에서 ‘재판’을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대법원 판결을 취소했던 헌재는 최근 형법상 뇌물죄 규정에 대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반하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심을 불허한 대법원 결정을 취소했다.
논란의 시작은 헌재가 법률의 외형은 그대로 둔 채 특정한 내용의 해석이나 적용에 대해 위헌이라고 선언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다. 법률 전체에 대한 위헌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면 그 일부에 대한 위헌 결정도 당연히 가능하다는 게 헌재의 입장인 반면, 헌법상 법령에 대한 해석·적용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된 권한이기 때문에 권력분립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과거 헌재가 도입한 여러 가지 변형결정 주문 형태 중 ‘양적’ 일부위헌 결정, 즉 특정 조항의 일부분을 위헌이라고 하는 헌재의 결정은 법원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조문에 변화가 없는 채 “~게 해석하는 한 위헌”, “~에 적용하는 한 위헌”이라는 형식의 ‘질적’ 일부위헌, 즉 한정위헌 결정이 문제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헌재는 이번에 ‘부분 위헌’, ‘일부 위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실질은 그동안 사용을 자제해온 한정위헌 결정이다.
분명한 건 지금 상황에서 두 기관 중 어느 곳도 그동안 고수해온 자신의 논리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청구인은 헌재에서 자신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받아도, 결국 다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때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아예 없는 상황이다. 실제 25년 전 위헌적인 세무사법 조항에 따라 세금을 부과 받은 청구인이 헌재와 법원을 오가며 헌재 결정의 취지대로 법원이 판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구제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이번 사건은 2014년 접수된 사건을 헌재가 묵혀 오다 청구인들이 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을 마친 이후에 재심 청구를 기각한 법원의 결정을 대상으로 헌재가 내린 결정이다. 만일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이 선고됐다면 헌재가 한정위헌이라고 결정한 법률 조항이 적용돼 구속된 피고인들은 계속 구치소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당연히 석방돼야 하는 건지 심각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방법으로 두 가지 정도를 제안하고 있다. 먼저 하나는 헌재가 논란이 된 헌재법 제68조 1항 중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배제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부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버리는 방법이다. 이 경우 헌재가 위헌이라고 밝힌 해당 내용이 조문에서 아예 삭제되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헌재가 재판을 취소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우리 입법자들이 헌재와 대법원 두 기관 간의 상호 견제, 역할 배분 등을 고려해 일부러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입법취지가 상실돼 버리는 폐단이 있다. 헌재가 결국 제4심이 돼버려 법원의 판결까지 통제하게 될 우려도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헌재의 위헌 결정이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 기속력을 갖는다는 조항을 ‘위헌(한정위헌 포함) 결정은’이라는 식으로 개정하거나, 헌재법 제68조 1항에 재판(단 헌재의 위헌 혹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은 제외)이라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추가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월 150만원 견디느니, 美 가서 5억 벌죠" 서울대...
결국 결정은 입법자의 몫이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나서 두 기관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또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지금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