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빨라지는 봄꽃 개화 시기
21세기 말에는 한달 가까이 앞당겨질 예정
꿀벌 등 꽃가루 매개 곤충에 치명적
꿀벌 멸종하면 100대 농산물 중 71종 위험

꽃에서 꿀을 채취하고 있는 꿀벌. 사진=독자제공

꽃에서 꿀을 채취하고 있는 꿀벌. 사진=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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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최근 벚꽃을 비롯한 봄꽃이 만개하면서 봄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국내 '꽃구경 명소'마다 관광객이 몰릴 정도다. 하지만 이런 완연한 봄기운이 오히려 생태계 붕괴의 조짐이라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때에 맞지 않는 높은 기온으로 인해 국내 야생화들이 지나치게 빨리 피면서, 꿀벌 등 곤충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점점 빨라지는 봄꽃 개화일…21세기 말엔 25일 앞당겨져

봄을 맞아 국내 관광 명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국내 숙박시설 예약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터파크투어'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전국 호텔·리조트 등 숙박시설 예약 수는 지난달 같은 기간 대비 무려 80% 폭증했다.


높은 증가율을 보인 곳은 강원(96.6%), 전남(92%), 경남(90%) 등 지방이었다. 봄꽃이 피면서 봄 분위기가 무르익자 시민들이 지방 관광 명소로 향한 것이다.

올해 국내의 봄꽃 풍경은 기존보다 훨씬 화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기상기업 '웨더아이'에 따르면, 올해 봄꽃 개화 시기는 서울 기준 진달래가 지난달 20일, 개나리 22일, 벚꽃은 28일이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이미 서울에서 여러 종류의 봄꽃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봄꽃 개화일은 매년 점진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앞서 기상청은 지난달 17일, 미래의 국내 봄꽃 개화일을 예측한 여러 시나리오를 공개한 바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제주시 전농로에 활짝 핀 벚꽃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오후 제주시 전농로에 활짝 핀 벚꽃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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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나리오에서 '고탄소 시나리오'(현 수준과 비슷하게 온실가스를 지속해서 배출한 상태)를 적용하면, 21세기 후반인 오는 2081년부터 2100년 사이 개나리 진달래 벚꽃 개화일은 현재보다 약 25일 더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겨울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장 봄꽃이 피는 기후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상고온이 개화 재촉…꿀벌 생태계에 치명적


봄꽃이 이전보다 더 빨리 피는 이유는 기후 변화 때문이다. 당장 지난 11~12일만 해도 국내 낮 최고기온은 최대 30도까지 오를 정도로 햇살이 강했다. 꽃의 개화는 통상 낮의 길이(광주기), 기온의 변화 등에 영향을 받는다. 봄에 꽃망울을 틔우는 봄꽃들은 오랜 기간 저온 환경을 겪다가 기온이 높아지면 반응하는 개화 형식을 가진다.


문제는 봄꽃들이 한 번에 만개하면서 국내 곤충 생태계를 뒤흔든다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생물 중 하나는 꿀벌이다.


애초 한반도의 봄꽃들은 동백꽃과 매화,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으로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해 왔다. 꿀벌은 개화한 야생화에서 꿀을 채취해 양분으로 삼는데, 기온이 높아져 꽃들이 한 번에 피었다가 비슷한 시기에 지면 갑작스럽게 식량이 끊기는 셈이다.


한국양봉협회 조사 결과 올해 초 국내 꿀벌 약 78억마리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양봉협회 조사 결과 올해 초 국내 꿀벌 약 78억마리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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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소멸' 현상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월7일부터 2월24일까지 한국양봉협회, 농촌진흥청, 농림축산검역본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합동으로 전국 9개도 34개 시·군에 있는 99호 양봉 농가를 대상으로 꿀벌 현황 현장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양봉협회 측은 전체 2만3697개 농가 중 4173개 농가(17.61%)에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약 78억마리가 넘는 벌이 월동 기간에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꿀벌 소멸'이 불러올 연쇄 효과…농산물 생산 위협받는다


꿀벌 소멸은 단순히 양봉 농가에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다. 꿀벌은 야생화에서 꿀을 채취하면서 몸에 꽃가루를 묻히고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지구 식물의 번식 체계에서 꿀벌은 매우 중요한 '운반체'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꿀벌 개체 수가 빠르게 감소하면, 언젠가는 꽃가루 확산으로 생장하는 식물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한국 농가도 꿀벌의 가루받이(수분)에 작물 생장 작업을 의존하고 있다. 사과, 멜론, 수박, 양파 등 여러 채소·과일이 여기에 속한다. 만일 꿀벌의 수분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국내에서 이같은 작물을 수확하기 힘들어진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꿀벌은 전 세계 야생 식물의 90%, 식용 작물 75%의 수분을 담당하고 있다. 인간이 먹는 100대 농작물 중 71종 작물이 꿀벌을 통해 생장한다. 그중에는 식용유의 주원료인 유채와 해바라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유럽 등 농업 선진국에서는 이미 꿀벌을 보호하고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영국 자선단체 '버그라이프'가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력해 구축 중인 'B-라인' / 사진=버그라이프 홈페이지 캡처

영국 자선단체 '버그라이프'가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력해 구축 중인 'B-라인' / 사진=버그라이프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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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영국의 경우 자선단체인 '버그라이프'가 정부, 지자체 등과 손잡고 꿀벌 친화적 통로인 'B-라인'을 구축 중이다. B-라인은 영국 전역에 걸쳐 총면적 4만8000㎢에 달하는 땅으로, 버그라이프는 여기에 야생화를 심어 꿀벌의 개체 수 증가에 이바지하고 있다.


미 농무부는 지난 2015년 꿀벌을 포함한 꽃가루 매개 곤충을 보호하기 위해 실태 조사 및 대책 마련에 착수했고, 유럽연합(EU)은 꿀벌에 치명적인 화학 성분이 들어간 살충제의 사용을 금지했다.


전문가는 국내에서도 꿀벌 소멸 피해가 심각하며, 정부의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화현 한국양봉협회 협회장은 "이번 합동 조사 결과 국내에서도 꿀벌 개체 수의 약 40%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양봉농가 입장에서도 피해가 막대한 실정"이라며 "과거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진 바 있고, 소멸 현상에 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상기온으로 인해 꿀벌들이 계절을 착각하거나, 작년과 재작년의 연인은 꿀 흉작으로 영양 공급이 덜 됐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라며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단순히 벌통 피해뿐 아니라 연쇄적으로 얼마나 피해가 더 커질지 알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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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양봉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한계가 뚜렷하다"라며 "정확한 피해 상황과 원인 파악, 이상기후 등 사육환경 변화에 따른 꿀벌 사육 기술 연구, 피해 농가 자금 지원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촉구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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