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으로 대체 제안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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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앞으로 성범죄를 처벌하는 법령이나 형사 판결문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가 사라질 전망이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4일 "성범죄 처벌 법령 등 형사 사법 작용의 근거 법규에 적시된 '성적 수치심' 등 부적절한 용어를 가해 행위 위주의 성 중립적 법률 용어로 변경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지난 17일 발표된 '디지털성범죄 피해 영상물 압수 제도 개선' 방안에 이은 위원회의 여덟 번째 권고안이다.


위원회는 성폭력처벌법과 청소년성보호법 등 성범죄 처벌법령과 인권보호 수사규칙, 형집행법 시행규칙 등 수사 및 형집행 관련 법규, 아동복지법, 노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 등에 사용되고 있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침해되는 법익과 가해 행위 중심의 성 중립적 용어인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가령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성폭력처벌법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식으로 개정하라는 취지다.


위원회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촬영물 또는 복제물(복제물의 복제물을 포함한다)을 이용하여 사람을 협박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정한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ㆍ강요) 1항은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 촬영물 또는 복제물(복제물의 복제물을 포함한다)을 이용하여 사람을 협박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로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또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한 같은 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1항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촬영대상자 동의 없이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위원회가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성범죄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공포·분노·비현실감·죄책감·무기력·수치심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피해 감정을 소외시키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해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성 차별적 용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가 503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에 대해 '가해자의 행위가 강조되는 다른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의 59.2%, '불쾌감 등 다른 용어로 바뀌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의 39.2%로 집계되는 등 삭제하거나 변경해야 한다는 대다수를 차지했다.


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8년 교수, 검사, 판사, 경찰, 변호사, 비정부기구(NGO) 등 전문가 48명을 대상으로 '처벌법상 사회적 법익 관련 용어 변경의 필요성'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65.2%) 또는 '성적 모욕감'(63%)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많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수치심'은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이라는 의미다.


성범죄를 처벌하는 다양한 법률에 '성적 수치심'이 범죄 성립에 필요한 구성요건으로 적시되고, 형사 판결문에도 기재되면서 실무상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마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 여부가 성범죄 가해자의 형사책임을 결정짓는 요소인 것처럼 오인을 불러 일으켜 실무에서도 고소장을 작성하거나 증인 신문 때 변호사들이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할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검사나 수사관이 피해자에게 "범행 당시 성적 수치심을 느꼈나요"라고 묻는 것은 피해자에게 왜곡된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우리 형사법에 이처럼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건 형법 제정 당시 참조한 일본 형법의 영향이다.


일본은 강간 등 성폭력 범죄와 성풍속 범죄를 같은 장에서 규정하면서 '음란'을 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 형법은 강간, 추행 등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와 공연음란죄나 지금은 삭제된 간통죄 등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를 따로 규율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형법의 영향으로 성풍속 범죄에서 사용되는 '음란' 개념으로부터 성폭력범죄인 '추행'의 개념을 도출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대법원은 '음란한 행위'를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성폭력 범죄와 성풍속 범죄의 보호법익이 다른 만큼 형법상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위원회의 입장이다.


외국 사례를 보면 독일과 영국은 법률 개정을 통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에서 '외설', '음란' 개념을 삭제하고 '성적 행위' 개념을 신설했다.


이에 위원회는 성이 아닌 '성을 매개로 한 폭력' 자체에 초점을 맞춘 중립적인 개념이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침해되는 법익과 가해 행위 중심의 성 중립적 용어인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위원회는 앞서 5차 권고안에서 밝힌 것처럼 현재 많은 법률에 사용되고 있는 '성희롱'이라는 용어는 성범죄를 희화화하고 범죄성을 희석시킬 우려가 높아 부적절하므로 '성적 괴롭힘'으로 대체해 줄 것을 재차 권고했다.


위원회는 "이번 권고안이 실현될 경우 '수치심'이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고정 관념과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2차 가해로부터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범죄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증진시켜 실질적 범죄피해 회복 등 치료적 사법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성범죄에 대한 형사책임의 판단기준을 가해 행위 자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법률적 개념으로 명확하게 정립함으로써 형사사법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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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법규와 내부 규율 전반에 걸쳐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편견을 유발하거나 성차별적 개념이 없는지 세밀하게 점검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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