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유럽의 '러시아 공포증' 언제부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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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과 서방 언론들의 공통된 시각은 러시아의 독재자이자 전쟁광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과거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한다며 일으킨 단순 침략전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전쟁의 모든 원인 제공부터 책임까지 러시아가 져야 한다는 논리 속에 푸틴은 과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아돌프 히틀러에 빗대 ‘푸틀러(Putler)’라 불리고 있다. 하지만 2차 대전도 흑백 논리로만 바라보기에는 너무 복잡한 국제정세가 개입된 것처럼 이번 전쟁 역시 단순한 선악의 개념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여러 국제적 이해관계들이 뒤섞여있다.

이러한 서구 중심적이고 천편일률적인 흑백논리에 문제를 제기한 책이 바로 ‘루소포비아(russophobia)’이다. 루소포비아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러시아 공포증’을 뜻한다.


책의 저자인 기 메탕은 2005년부터 스위스-러시아 및 옛 소련계 독립국가연합(CIS) 가맹국 상공회의소 대표이자 스위스의 칼럼니스트다. 민족 문제, 사회 정치적 주제와 국제관계에 관한 책도 수차례 펴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서구 사회인 스위스 언론인 출신이지만 서방 측에서 일반화된 관점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입장에서 유럽과 국제정세를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자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서유럽이 러시아에 대해 만든 고정관념들과 잣대들로 형성된 이 루소포비아가 크게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원래 루소포비아란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나폴레옹으로 알려져 있다. 1812년, 그가 러시아 원정 실패 직후 프랑스 내 어용 신문들을 통해 루소포비아를 이슈화한 기사를 게재하도록 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나폴레옹은 "유럽은 이제 필연적으로 러시아의 전리품이 될 위험에 놓였다"고 선전했다. 이후 러시아군이 나폴레옹군을 격파한 뒤 유럽 각국에 주둔하며 약탈행위를 일삼으면서 루소포비아는 현실화됐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루소포비아의 뿌리는 이보다 더 깊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중세시대부터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교와 러시아의 동방정교회는 대립관계였고,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더욱 충돌이 가시화됐다는 것이다.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쌓여온 대립과 오해가 러시아를 마치 악의 제국처럼 그려놓았으며 이것이 오히려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를 매우 좁혀놓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를 비난하면서 끌어대는 기준이 자신들에게 비슷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적용하는 기준과 완전히 다르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예를 들어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뉴욕이나 런던, 파리에서 발생하면 해당 테러리스트들은 "극악무도한 야만적 범죄자"로 비난받지만, 유사한 사건이 모스크바에서 발생하면 "이슬람 자유의 전사들"로 칭송받는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행위는 명백히 비난받아야 할 일이지만 전쟁의 원인과 앞으로의 평화로운 미래 정착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물론 그동안 서구 중심 문명사에 가려져있던 유럽 내 러시아에 대한 시각과 구체적인 이해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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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 기 메탕 | 김창진·강성희 옮김 | 가을의 아침 | 2만7000원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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