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동권 위해 '나쁜 장애인' 자처하는 전장연…쏟아지는 혐오 어쩌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3호선 충무로역서 출발, 경복궁역 거쳐 4호선 혜화역서 마무리
"비장애인이 안전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장애인도 함께 이용하면 안 되겠나"
"정치권도 찾아가봤다, 21년 간 외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
장애인 향한 혐오 도넘어…폭언·협박에 사이버 공격까지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저희 뒷통수에 대고 '암덩어리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고요. 우리(장애인)가 돌아다닌다는 이유로요."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출근길 시위는 서울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에서 출발해 3호선 경복궁역·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거쳐 혜화역에서 마무리됐다. 기획재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예산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혜화역 승강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이 사회가 우리를 암적인 존재로 만든 거잖아요. 우리가 돌아다닌다는 이유로요"라며 "일부 시민들은 장애인을 암덩어리로 보겠지만 이건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우리도 사람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거다. 이동에 대한 권리는 비장애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는 권리"라고 분명히 했다.
◆ 21년 이어진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국회도 가고, 정치인도 만나봤는데 바뀌는 게 없더라"
이날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전 7시40분쯤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경복궁 방향 3호선 열차를 탑승했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은 충무로역에선 휠체어를 탄 채로 열차 탑승이 어려워, 서울교통공사 측 직원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이동식 발판을 놓았다. 반면 혜화역의 경우 열차와 승강장 사이 공간을 메우는 설치물이 있어 휠체어가 오르내리기 쉬웠다.
열차에 탑승한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시민들에게 "저희는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위해 21년을 외쳤다.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17일째 지하철을 타고 있다"며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보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답변을 기다렸지만 무책임한 말을 반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박 대표는 "(시위로) 시민 여러분들이 10분, 20분 늦는 것에 대해서 많은 불편함을 느끼시고, 또 저희들을 비난하시는 것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저희는 여러분들이 일상으로 보장받고 있는 이동할 권리, 21년을 외쳐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교통수단을 저희도 좀 같이 이용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정치하는 위정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해야지.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불편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고 큰소리로 항의하는 시민 A씨(남)에겐 "저희도 국회도 가보고 정치인도 다 만나봤다.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키더라"고 차분히 답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왼쪽)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넓어 이동식 발판 설치 없이는 휠체어 탑승이 어려웠다. 반면 4호선 혜화역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좁아 발이나 휠체어 바퀴가 빠질 위험이 없었다./박현주 기자 phj0325@
원본보기 아이콘박 대표는 불편한 지점도 놓치지 않고 바로잡았다. 시위 초반 "3호선 구간에서 장애인단체의 불법시위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던 열차 안내 방송은 박 대표의 거듭된 항의 끝에 "전장연의 시위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고 바뀌었다. 박 대표가 서울교통공사 측에 "(우리 말고도) 다른 장애인 단체들이 많으니 전장연 시위라고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불법 시위가 아니라 이동권 보장 시위라고 정확히 이야기해주십시오. 시민들에게 편견을 주지 마시고요"라고 요청한 덕분이다.
서울교통공사 측에 따르면 이날 지하철 운행은 지연되지 않았다.
◆ 작은 불편함이 혐오로…"장애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이 표출된 것"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는 지난 2001년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태를 계기로 촉발됐다. 리프트가 계단 가까이 위치해 있다보니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사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10월 지하철 1·5호선 신길역에서 중증장애인인 고(故) 한경덕 씨가 리프트를 이용하려다 계단으로 떨어져 숨진 바 있다.
그동안 이들은 '장애인 혐오'와도 싸워야 했다. 시위가 길어진 만큼 혐오의 수위도 높아졌다. 불편함에 대한 일반적 항의에 그치지 않고, 전장연을 향한 심각한 수위의 폭언과 협박까지 쏟아지는 상황이다. 벽면에 부착한 선전물이 훼손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전장연 관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라는 곳에서 조직적으로 모여 선전물 훼손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내일 오면 또 선전물이 훼손돼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전장연의 시위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청원인은 "장애인들이 불편사항 개선에 대해 요구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특정 장애인 단체가 무고한 시민들의 시간과 금전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며 처벌을 촉구했다.
특히 전장연은 지난 15일 온·오프라인 공격에 시달렸다. 전장연에 따르면 이날 홈페이지는 사이버 집중 공격으로 서버가 다운됐고, 구글 드라이브 파일도 삭제됐다. 박 대표는 "장애인 활동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폭언과 협박을 당했고, 전장연 사무실로 찾아와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시민도 있었다. 기자회견을 알리는 페이스북 라이브는 모욕적인 댓글로 가득하다"고 전했다.
이형숙 회장은 이같은 일부 혐오의 시선에 대해 "사실 그게(혐오가) 내면에 잠재된 거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들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봤다. 시위로 인한 불편함을 계기로 일각의 '장애인 혐오여론'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내재돼 있던 내면의 혐오가 표출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발언 중인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팻말을 든 활동가들 뒤 벽면에 부착된 선전물이 훼손돼있다./박현주 기자 phj0325@
원본보기 아이콘그러나 21년 간의 투쟁은 전장연 활동가들을 정신적으로 단련시켰다. 일부 몰지각한 비난도 이제는 웃어넘기는 수준이 됐다.
박 대표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오늘은 어떻게 견딜까', '그리고 나 혼자 견디는 것보다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비난, 혐오 그리고 협박(을 견딜까 생각한다)"면서도 "계속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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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면 우리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외치고 있다"면서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주권자, 즉 시민이다. (아직까지 권리 보장이 되지 않은 것은) 21년 동안 주권자들의 무지, 편견, 무관심이 켜켜이 쌓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이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혜화역) 5-3, 5-4 (승강장은) 나중에 언젠가 역사에 기록될 장소가 될 것"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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