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인 마리우폴에서 전투교육에 참가한 어린아이가 소총 탄피의 실탄을 제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침공 우려가 확산되면서 여성들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마리우폴(우크라이나)= A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인 마리우폴에서 전투교육에 참가한 어린아이가 소총 탄피의 실탄을 제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침공 우려가 확산되면서 여성들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마리우폴(우크라이나)=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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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크게 고조되면서 유럽에서는 ‘러시아공포증(Russophobia)’ 이란 용어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19세기 초반 생성된 이후 200년 이상 유럽 사회에 뿌리 박힌 이 공포증은 유럽 근·현대사의 흐름에도 크게 작용해 왔다.


원래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은 나폴레옹으로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 직후 프랑스 내 어용 신문들을 통해 러시아공포증에 대한 기사를 게재토록 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나폴레옹은 "유럽은 이제 필연적으로 러시아의 전리품이 될 위험에 놓였다"고 선전했다. 이후 러시아군이 나폴레옹군을 격파한 뒤, 유럽 각국에 주둔하며 약탈행위를 일삼으면서 러시아공포증은 유럽사회에 뿌리 깊게 박혔다고 한다.

이후에도 러시아는 유럽과 별개의 지역으로 분류되며 낙후되고 폐쇄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독재체제를 가진 위험한 국가로 인식됐다. 1830년 러시아가 폴란드 독립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한 뒤, 때마침 인도에서 번지기 시작한 콜레라가 유럽에 대유행하게 되자 유럽 주요 언론들에서 러시아가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일부러 콜레라를 퍼뜨렸다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하면서 기존의 러시아공포증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색공포(Red Scare)’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심화됐다. 이는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에 적대적이던 나치독일의 집권을 용인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묵인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매카시즘 형성에도 기반이 됐다.

그나마 1991년 옛 소련의 붕괴 이후 한동안 잊혔던 러시아공포증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다시 동유럽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영광을 재현한다며 군사활동과 자원무기화 등 공격적인 외교를 서슴지 않으면서 동유럽 주요국들은 안보위험에 휩싸였다. 동유럽 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국들 입장에서는 방파제 역할을 해온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완전히 러시아의 영향력으로 들어갈 경우, 자국이 최전선이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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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전쟁 위험에선 한발 떨어져 있는 비서구 국가들도 자국 경제에 끼칠 압박을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에서 겨우 벗어나 경제회복 방안을 모색해 보려던 찰나에 새로운 전쟁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유럽의 빵집’이라 불리며 전 세계 밀값을 좌우하는 우크라이나와 석유와 천연가스는 물론, 각종 전략자원의 천국인 러시아의 경제가 전쟁으로 멈추면 공급망 위기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공포증이 앞으로 유럽에서 전 세계로 확대될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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