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1심 때 소명자료 냈는데 2심에서 국선변호인 선정 안 한 건 위법"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피고인이 1심 재판 때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하면서 생계가 어렵다는 소명자료를 이미 제출했는데도 2심 법원이 소명자료 제출이 없다는 이유로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기각한 채 재판을 진행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불안감 유발 문언 등 반복 전송) 및 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빈곤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피고인의 청구가 있는 때에는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피고인이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그 사유에 관한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함이 원칙이지만, 기록에 의해 그 사유가 소명됐다고 인정될 때에는 그렇지 않다"고 전제했다.
형사소송법 제33조는 1항에서 ▲피고인이 구속된 때 ▲미성년자인 때 ▲70세 이상인 때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인 때 ▲심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때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에 변호인이 없는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도록 했다.
또 같은 조 2항은 '법원은 피고인이 빈곤이나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피고인이 청구하면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형사소송규칙 제17조의2(국선변호인 선정청구 사유의 소명)는 '법 제33조 2항에 의하여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하는 경우 피고인은 소명자료를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기록에 의하여 그 사유가 소명되었다고 인정될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다.
즉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하는 때가 아닌 경우 피고인이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할 때에는 빈곤 등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사유를 소명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기록상 이미 사유가 소명됐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소명자료 제출 의무가 면제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점을 지적하며 2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2심에서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할 당시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으나, 1심에서 이미 자신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에 해당한다는 소명자료를 제출한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그렇다면 피고인의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는 기록상 '현재의 가정형편상 개인적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렵다'는 점에 관한 소명이 있다고 인정되므로, 원심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선변호인 선정 결정을 해 그 선정된 변호인으로 하여금 공판심리에 참여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이와 달리 원심은 피고인의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기각한 채 이후의 공판심리를 진행했으므로, 이러한 원심의 조치에는 국선변호인 선정에 관한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위반함으로써 피고인으로 하여금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효과적인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IT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2015년 B씨가 대표로 있던 C 주식회사와 경영권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를 C 회사에 합병했다.
이후 A씨는 계약 당시 1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주장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B씨가 주지 않자 '기업 운영에 비리가 있다'는 취지의 제보를 할 것처럼 압박하기로 마음먹고, B씨에게 2018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총 174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메시지의 내용과 횟수, 피해자가 입었을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며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 A씨는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유를 증명할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한 뒤 변호인이 없이 A씨만 출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해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급여수급자이고, 원심판결 선고 전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피해자가 대표이사인 주식회사 C의 피고인에 대한 해고는 부당해고임이 판정됐으나,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았고, 원심판결 선고 후 피고인의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할 만한 새로운 특별한 정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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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결이 국선변호인 선정에 관한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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