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동물 실험 쓰이는 동물 수, 한 해 400만마리 이상
최고 고통등급 D·E에 노출된 동물 전체 70% 넘어
의약품·화장품 승인 등에 쓰이는 동물 실험
전문가 "지금 당장 없앨 순 없어도 대체 노력 필요"
美·英 등 과학 선진국선 대체 실험 적극 연구 노력

국내 한 연구팀이 개의 안구를 적출한 뒤 3D 프린터로 제작한 맞춤형 가짜 안구를 이식하는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학계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 사진=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캡처

국내 한 연구팀이 개의 안구를 적출한 뒤 3D 프린터로 제작한 맞춤형 가짜 안구를 이식하는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학계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 사진=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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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해 초, 국내 한 국립대에서 나온 과학 논문이 실험 동물을 지나치게 잔혹하게 대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동물 실험 윤리' 논란으로 번졌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 동물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의 숫자만 400만마리 이상에 달하며, 이들 중 상당수는 심각한 고통·스트레스 등을 견뎌야만 한다. 비록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 동물 실험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윤리 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논문은 지난 2020년 11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게재된 것으로, 한 국내 국립대 수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제출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 연구팀은 반려견용 맞춤 제작 인공 안구의 안전성을 실험하기 위해, 한쪽 눈이 적출된 비글에게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눈을 심은 뒤 6개월간 경과를 관찰했다.


그러나 수개월 뒤 이 연구는 국제 학계로부터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지난해 1월에는 플로스 원 편집진이 직접 우려를 표명하는 논평을 게재했다.

편집진은 논문에 대해 △연구 동기가 개의 건강 문제 해결이 아닌 단순한 미용 용도라면 정당화될 수 없으며 △실험에 이용된 동물의 수술 직후 통증, 염증 등 진통 처방 계획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후 플로스원 측은 이 연구가 윤리 기준을 충족했는지 여부를 두고 재평가한 뒤에 후속 조처를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부 시민들은 연구 방법이 지나치게 잔혹하다며 이 연구팀을 규탄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일부 시민들은 연구 방법이 지나치게 잔혹하다며 이 연구팀을 규탄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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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대한 윤리 논란은 이후 국내 언론들을 통해 한국에도 보도됐고, 시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지난해 1월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멀쩡한 비글의 눈을 적출한 뒤 인공 눈을 심는 동물실험을 한 수의대 연구팀을 규탄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3만건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동물권 단체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당시 "실험 동물인 두 마리의 비글에 대한 인도적인 고민은 전혀 엿볼 수 없었다"라며 "반려동물과 실험실 동물 사이의 그 '생명의 가치'의 차이는 무엇인가"라고 질타했다.


국내에서 시행되는 동물 실험에 대한 비윤리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윤리위)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만 국내 동물 실험에 동원된 동물은 약 414만마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지난 2008년 이후 연간 최대치에 달하는 수치다.


실험용 쥐인 '랩랫(Labrat)'에 주사하는 연구원의 모습.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실험용 쥐인 '랩랫(Labrat)'에 주사하는 연구원의 모습.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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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윤리위는 실험 대상이 된 동물의 고통과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고통등급'을 평가한다. 이 등급은 가장 낮은 A(죽은 생물체나 식물, 무척추동물 등을 이용한 연구)부터 E(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스트레스)까지 총 5단계로 나뉜다.


지난 2020년 기준 국내에서 실험 동물로 쓰인 414만마리 중 42%에 해당하는 약 175만7000마리가 E 등급의 실험에 쓰였다. '중증도 이상의 고통 억압'을 주는 D등급 실험 또한 130만9000여마리에 달해 31%가량을 차지했다. 가장 높은 고통등급인 D·E에 쓰인 동물 숫자가 70% 이상에 달한 것이다.


오늘날 동물 실험은 의약품, 화장품, 식품 등 인간이 사용하는 제품의 효과와 안전성 등을 관찰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인체에 직접 투약되는 특성상 안전이 가장 우선시되는 의약품의 경우 동물 실험은 매우 중요한 절차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20년 사용된 전체 동물 중 약 43.4%인 179만5709마리가 '의약품 승인 등 법적인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한 규제시험'에 동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산업 및 과학의 발전을 위해 동물 실험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나, 실험 동물 10마리 중 7마리가 극심한 고통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니 보다 신중한 윤리 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유전체학 연구기관인 영국 '웰컴트러스트 생어 연구소'의 동물 실험실 내부 모습. / 사진=생어 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세계 최대의 유전체학 연구기관인 영국 '웰컴트러스트 생어 연구소'의 동물 실험실 내부 모습. / 사진=생어 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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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선진국인 미국·영국 등에서는 동물 실험을 대체할 다양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앞서 지난 2019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오는 2035년까지 포유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모두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EPA는 존스홉킨스대, 밴더빌트 의료센터 등 유관 연구기관에 425만달러(약 51억원)를 지원해 컴퓨터 예측 모델링 실험·시험관 실험 등 대체 실험 방법을 마련할 방침이다.


영국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유전체학 연구센터로 알려진 영국 '웰컴트러스트 생어 연구소'는 오는 2022년까지 모든 동물 실험실을 폐쇄할 계획이다. 생어 연구소는 인공 세포 배양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실험 동물을 대체할 예정이다.


전문가는 국내에서도 동물 실험을 줄이고 다른 대체 방안을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동물자유연대' 측은 "지금 당장 동물실험을 없앨 수는 없지만, 최대한 동물을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인공피부, 조직배양, 컴퓨터를 이용한 실험으로 동물 실험을 대체하고, 실험 동물의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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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래도 대체할 수 없는 동물 실험이 있다면, 실험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비인도적 처치를 최소화 하고 적절한 진통제와 마취제를 사용하고, 필요하다면 인도적인 방법으로 안락사를 시키고 위생적인 환경과 충분한 먹이, 공간, 운동 여건 등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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