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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의 에너지 전쟁] 고유가에도 셰일오일 생산이 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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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과 2016년 국제유가 폭락 원인이었던 셰일오일 과잉공급
올해 특이한 현상, 배럴당 80달러 넘었지만 생산 늘지 않아

셰일오일기업, 성장주로서 투자자에게 어필 못 해
코로나19 시기 나타난 유가 폭락과 실적 악화로 석유기업 매력 상실

아시아경제신문은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자에 대변혁기를 맞은 에너지 산업을 진단하고 그에 얽힌 국제 질서 변화를 짚어보는 '최지웅의 에너지전쟁'을 연재합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ㆍ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ㆍ가스 MBA 과정을 밟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 입니다.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지난해에는 본지에 <석유패권전쟁> 칼럼을 연재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지웅의 에너지 전쟁] 고유가에도 셰일오일 생산이 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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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석유시장의 가장 큰 뉴스는 단연 미국 셰일오일의 등장이었다. 2010년 일일 생산량 100만배럴도 되지 않던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2019년 800만배럴에 이른다. 미국 원유 생산의 3분의 2 이상이면서,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8%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이었다.


셰일오일의 등장은 석유시장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2015년과 2016년에 과잉 공급을 야기하며 국제유가를 폭락시켰다. 이를 계기로 기존 중동 산유국 중심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외에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산유국 그룹 OPEC+(OPEC 회원국과 비OPEC 협의체)가 출범하게 된다. OPEC+는 2016년 말 새로운 감산 실행에 합의했다. 그 합의가 연장을 계속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OPEC+가 감산을 이어가던 2018년과 2019년에도 셰일오일은 연평균 일일 생산량 약 140만배럴의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말 그대로 셰일혁명이었다. 2018년에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OPEC+ 내에서는 감산 무용론이 제기된다. OPEC+가 힘겹게 감산을 하면 그 빈자리를 미국의 셰일오일이 채운다는 것이다. 감산의 열매를 미국이 누린다는 불만은 2020년 3월 감산 중단으로 이어졌다. 러시아가 감산 협의를 거부한 것이다. 사우디 역시 증산으로 맞불 대응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세계 언론은 이를 ‘유가 전쟁’이라 불렀다. 그러나 공멸하는 전쟁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한 달여 만에 OPEC+는 감산에 복귀했다. 당시 미국의 원유 생산량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며 직전 분기 대비 20% 가까이 급감해 자연스럽게 감산에 동참했다.


그런데 올해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유가는 회복세를 지속하면서 최근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유가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셰일업계는 생산을 거의 늘리지 않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미국 원유 생산량은 일일 1106만배럴로 코로나19가 발생한 작년 2분기 대비 약 3.6% 늘었을 뿐이다. 같은 시기 서부텍사스원유(WTI) 유가는 거의 3배(2020년 4월 평균 28.5달러→2021년 10월 평균 80.5달러)로 상승했다. 고유가는 증산을 통해 수익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셰일 생산량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10월 초 중견 석유기업 옥시덴털의 최고경영자(CEO) 비키 홀럽은 생산량을 늘리기보다는 마진을 높이고 배당에 힘쓸 것이며, 과거와 같은 성장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셰일오일업체 파이오니어도 고유가가 셰일업계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배당 확대와 부채 상환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무엇이 셰일오일기업들을 이렇게 엄격하게 자제하게 하는 것일까.

셰일오일기업들이 생산량을 유지하는 첫째 이유는 셰일오일기업이 더 이상 성장기업 또는 성장주로서 투자자에게 어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 성장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있는 분야에서 생산 확대를 위한 신규 투자는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투자자에게 석유산업은 5G, 인공지능(AI)처럼 미래 주역으로 주목받는 산업이 아니다. 오히려 석유산업보다 석유 수요를 줄일 것으로 기대되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 투자자의 관심이 몰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셰일오일기업이 과거처럼 투자와 생산을 늘려가며 성장 기업으로 어필한다는 것은 호소력이 없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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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유는 작년의 악몽이다. 석유기업이 가진 숙명적 리스크는 유가에 따라 실적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 리스크가 작년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작년 4월 중견 셰일오일업체 화이팅 페트롤리엄이 파산 보호 신청을 했고, 6월에는 체서피크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특히 체서피크는 셰일혁명의 핵심 기술인 수압파쇄법을 선도했던 기업 중 하나여서 투자자의 충격이 컸다.


일정 규모의 부채를 유지하는 기업은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면 또 다른 신규채권을 발행해 기존 부채를 상환한다. 이러한 차환 과정이 원활히 일어나지 않으면 기업은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기업이 투자자를 지속적으로 유치하며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성장이 기대되는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든지 아니면 철밥통 같은 안정적 수익을 유지하며 투자의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나타난 유가 폭락과 실적 악화는 안정성 관점에서 석유기업의 매력을 상실하게 했다. 여기에 더해 탄소중립 기조가 장기 유가에 대한 의구심을 짙게 하면서 석유산업이 과거와 같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유가 하락으로 작년에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큰 폭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체서피크도 작년 1분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손실 폭이 급증했고, 약 85억달러의 자산손상도 발생했다. 결국 체서피크는 채권자 설득에 실패하며 파산보호 신청에 이른다.


이 상황에서 유가 사이클에 의존해서 자본적 지출을 늘렸다가 코로나19, 인플레이션, 탄소 규제 등과 같은 변수에 의해 수요가 하락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시그널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가 대거 이탈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셰일오일기업들은 안정적 매출과 이익을 유지하는 투자처로 정체성을 변모하려 한다. 성장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안정적 현금흐름으로 고배당과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려 한다. 지난 10년의 성장기에 늘려왔던 부채 규모를 축소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셰일오일업계의 시장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음을 뜻한다. 지난 10년간 셰일오일이 유가 변동의 주요 요인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전에 없던 새로운 물량이었기 때문이다. 종래에 없던 물량이 무서운 속도로 시장에 들어오면서 기존 질서를 흔들었다. 그러나 지금 셰일오일은 더 이상 굴러온 돌이 아니라 박힌 돌로 정착했다. 이젠 셰일오일기업은 더 이상 고위험, 고수익의 성장주가 아니라 사이클에 관계없이 일정한 생산과 수익을 유지하는 기업으로 변하려 한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 유가라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유가라는 본원적 리스크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에너지 기업도 장기적 시각에서 꾸준하게 에너지 자원과 관련한 역량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기일수록 유가 변동과 수급 불안에 대비할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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