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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1000억과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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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체류 중이던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남욱 변호사가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 검찰 수사관에게 체포돼 공항을 나서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미국에 체류 중이던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남욱 변호사가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 검찰 수사관에게 체포돼 공항을 나서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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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체포돼 검찰 수사관과 함께 들어오던 그의 표정에서 긴장감은 읽히지 않았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한 고단함마저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가 달려든 취재진에게 리듬감을 실어 건넨 "죄송합니다"라는 첫 마디는 연예인의 복귀 인사로 오해를 살 뻔 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의 여유는 얼굴과 말투에서 흘러넘친다. 반나절이 넘는 검찰 조사에도 "한마디 했다가 검찰에서 혼났다. 농담이다"는 말은 물론 취재진에게 "나중에 커피 한 잔씩 사주겠다"고 했다. 모여든 취재진에게는 "집에 갈 때까지 같이 가시죠. 강남역으로 가니까"라며 웃기도 했다. 오전 조사를 마치고 나온 뒤에는 "아무 말씀 못 드리는 것 아시지 않나"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8721만원을 출자해 1007억원의 배당금을 쓸어 담은 남욱 변호사는 이미 부동산 업계에서 전설이 됐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한 시행사 대표는 "본인이 설계부터 관여해 1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점을 감안하면 LH 사태 당시 땅투기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피라미 수준"이라고 평했다.


남 변호사는 10여년 전부터 '대장동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실행에 옮긴 핵심으로 꼽힌다. 하지만 미국에 숨어있던 탓에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 등 이른바 '핵심 4인방' 가운데 유일하게 초기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는 혜택을 누렸다.


입국 과정에서 체포돼 검찰로 압송,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지만 검찰은 체포시한(48시간)이 끝나기 5시간 전 끝내 영장을 청구하지 못하고 돌려보냈다. 대장동 개발의 몸통으로 유 전 본부장과 김씨가 지목되고 정치권 다툼으로 이어지며 남 변호사가 조연으로 바뀐 순간이다.

남 변호사는 이미 이번 사태의 결말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3년 위례자산관리 대주주 정재창씨, 정 회계사 등과 함께 유 전 본부장에게 3억5200만원을 전달했는데, 공소시효가 10년인 뇌물수수와 달리 해당 혐의(뇌물공여)는 공소시효 7년이 지나 자백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2015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대장동 개발에서 빠지도록 국회의원 불법 로비를 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무죄까지 받아낸 경험도 있다. 대장동 핵심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 녹취록은 연계 물증 확보에 실패하며 힘을 잃고 있다.


남 변호사의 여유에서 이번 사태의 최종 결말이 그려지기도 한다. 검찰이 야권과 여론 뭇매로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대장동 개발의 뒷배를 확인하기 위해 작심하고 치는 본새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재판에 넘긴 유 전 본부장의 공소장은 배임 혐의가 빠지는 등 반으로 쪼그라들었고 몸통으로 지목되던 김씨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재청구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한 달 넘게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대장동 수사가 '윗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유동규와 김만배가 공모한 '부동산 개발 비리 사건'으로 끝날까 우려스럽다. 사태가 터지기 전 이미 강남에 수백억원대 빌딩을 사놓고 미국에 가족을 보내놓은 그가 배당금과 추가 수익금까지 챙겨들고 유유히 이 나라를 떠난다면 중뿔나지 않은 사람들도 비난에 나설 수밖에 없다. 공영개발을 빙자해 지위와 법을 악용한 꾼들은 물론 불필요한 틈새를 만들어준 설계자나 기관까지 모두 책임을 져야한다.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검찰과 정치권을 국민은 지지할 리가 없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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