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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기죄 성립 여부 돈 빌릴 당시 기준으로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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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사진제공=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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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돈을 빌린 뒤 약속한 변제기일까지 갚지 않았을 때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돈을 빌릴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돈을 빌린 이후에 경제사정이 악화돼 제때 변제하지 못했더라도 돈을 빌릴 당시 상황에 비춰 애초부터 갚지 않을 의사로 돈을 빌렸다고 볼 수 없다면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소비대차 거래에서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록 그 후에 변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방송국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15년 2월 1일 과거 자신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B씨에게 "돈을 융통할 곳이 없는데 2000만원만 빌려주면 한달 뒤인 2월 말까지 갚겠다"며 2000만원을 빌렸다.

하지만 A씨는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지 않았고 B씨도 특별히 변제를 독촉하지 않았다.


이후 A씨는 2016년 12월 직장을 잃게 되면서 급격히 경제사정이 나빠졌고, B씨가 2017년 4월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지만 갚지 못하자 B씨는 민사소송 제기와 동시에 A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A씨가 애초부터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 없이 B를 속여서 돈을 빌렸다고 보고 사기죄 유죄를 인정,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월 200만원 정도의 고정수입밖에 없었던 A씨가 B씨에게 돈을 빌릴 당시 이미 2억 70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던 데다, B씨에게 빌린 2000만원을 다른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고 곧바로 다수의 대부업체로부터 58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애초 A씨는 변제할 의사 없이 다른 채무를 갚는데 사용할 목적으로 B씨로부터 돈을 편취했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재판부는 A씨가 "2월 말까지 갚겠다"고 얘기하면서 돈을 빌리긴 했지만, 약속한 변제기일이 지난지 2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B씨가 변제를 독촉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얘기한 2월 말을 두 사람 사이에 약속한 변제기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애초 약속한 2015년 2월 말에 B씨가 변제를 독촉하거나 A씨가 변제기 유예를 요청한 사실이 없는 만큼 A씨가 얘기한 2월 말은 조속한 변제의 다짐 내지 추상적인 변제가능성을 고지한 것일 뿐, 두 사람 사이의 채무는 '변제기를 정하지 않은 채무'로 봐야하고 B씨가 변제를 독촉한 2017년 4월 27일에 비로소 변제기가 도래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취지다.


또 B씨에게 돈을 빌린 뒤 직장을 잃게 되며 경제사정이 급격히 악화됐지만 돈을 빌릴 당시 기존 채무가 있었다거나, B씨로부터 돈을 빌린 뒤 추가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B씨에게 돈을 빌릴 당시 A씨에게 변제할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봤다.


사기에 대한 미필적 고의에 관해서도 대법원은 1·2심과 달리 봤다.


앞서 1심과 2심은 여러 사정들을 종합할 때 적어도 A씨에게 미필적인 편취의 범의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설령 피고인이 변제불능의 위험을 인식·용인했다고 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돈을 융통할 곳이 없다'며 자신의 신용부족 상태를 미리 고지한 이상 피해자가 변제불능의 위험성에 관해 기망을 당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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