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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댓글 폐지 1년] 올림픽 '악플테러'… SNS로 전이<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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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선수, 그들은 왜 타킷이 됐나

경기력 여부 상관 없이 인신공격
내로남불식 본능 극복하지 못해
익명성 숨어 비뚫어진 악플 표출

모욕죄·명예훼손죄 처벌 가능하나
선수 개인 대응 나설 시스템 아냐

지난달 31일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송범근이 실점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송범근이 실점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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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김대현 기자]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은 지난해 8월 스포츠 뉴스 댓글을 폐지했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여자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의 극단적 선택 이후 재발 방지 차원에서 내린 조치다. 도쿄올림픽은 해당 조처 이후 처음으로 열린 세계 스포츠 축제다. 올림픽 뉴스 콘텐츠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악플은 여전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전이돼 활개치고 있다. SNS 등은 포털사이트와 달리 최소한의 규제 장치도 없다. 스포츠 경기가 집약된 올림픽 시즌 주인공이자 당사자인 선수들이 되레 더 무분별한 악플에 노출되는 폐해가 생긴 것이다.


[스포츠 댓글 폐지 1년] 올림픽 '악플테러'… SNS로 전이<上> 원본보기 아이콘

SNS, 악플의 새 향연장으로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31일 멕시코와 8강전에서 3-6으로 졌다. 골키퍼 송범근 책임이 컸다. 골대로 날아온 슈팅 10개 중 절반 이상을 놓쳤다. 골문을 지키는 선수란 단어(골키퍼) 뜻이 무색했다. 축구 통계전문 '소파스코어'도 송범근에게 양팀 선수 통틀어 가장 낮은 평점 5.3을 줬다.

경기 후 국내 포털사이트에는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이 중엔 20만명 넘게 읽힌 기사도 있었다. 댓글은 없었다. 과거였다면, 축구대표팀과 송범근을 향한 비난 아닌 악플이 홍수를 이루고 범람했을 기사다. 포털사이트가 스포츠 뉴스 댓글을 폐지 조치의 순기능이다.


비슷한 시각, 송범근 SNS에는 악플이 쇄도했다. '선방하는 꼴을 못 봤네. 괜찮다. 역량이 거기까지니까", "적당히 못 하는 건 용서가 되는데 당신은 적당히가 아님", "그냥 은퇴하고 선수생활 접고 귀농 하는 걸 추천드린다" 등 원색적인 악플이 넘쳤다. 과거 포털사이트 뉴스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뤄진 악플이 선수 개인 SNS로 이동한 셈이다. 포털사이트의 댓글 폐지 조치가 부른 '풍선효과'다. 송범근은 현재 SNS 댓글 기능을 차단한 상태다.


안산이 지난달 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목을 걸고 시상대를 나오던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안산이 지난달 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목을 걸고 시상대를 나오던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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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다

선수들을 향한 악플 세례는 경기력 여부와 상관 없이 쏟아지기도 했다. 양궁대표팀 안산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지난달 24일 혼성 단체전과 이튿날 여자 단체전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딴 후 예상치 못한 '협오 공격'에 휩싸였다. 안산이 자신의 SNS에서 '왜 머리를 자르냐'고 묻는 한 팬의 질문에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답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이들 두고 남초 성향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짧은 머리와 여대를 다닌다는 점을 근거로 안산을 페미니스트로 몰아세웠다. "금메달 반납해라", "금메갈리스트", "꼴페미" 등 무차별 인신공격도 이어졌다. 안산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적이 없다.

여자 탁구대표팀 전지희도 경기 외적으로 악플 세례를 받았다. 지난달 28일 여자단식 8강에서 이토 미마(일본)에게 패한 뒤 과거 한 성형수술이 중국 누리꾼들의 표적이 됐다. 중국 누리꾼들은 전지희 SNS에 "한국으로 성형하러 갔느냐", "얼굴을 통째로 바꾼 거냐"며 비아냥댔다. 성형수술 전·후 사진을 비교하며 인신공격성 악플을 이어갔다. 전지희는 이 같은 악플에 대해 "왜 탁구가 아닌 쌍꺼풀에 더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다"면서 "신경 안 쓰고 경기만 준비했다"고 했다. 중국 랑팡 출신인 전지희는 2008년 국내로 이주해 2011년 한국 국적을 얻었다.



유독 그들에게 쏠리는 이유

선수들은 왜 악플의 표적이 될까. 태극마표를 가슴에 달고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 무대에 출전한 그들이다. 경기력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안산 등 사례만 봐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 사회학에서는 '익명성'과 '본능'이란 키워드에 주목한다. "자기중심적이고 내로남불식의 본능은 모두에게 있다. 이를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극복하지 못하고 이렇게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악플로 표출하는 것이다." 박종민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의 말이다.


구조적 측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윤영길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연예인은 소속사 등에서 도움을 줘 조직적 대응이 가능하지만 선수들은 에이전트가 그런 역할을 꼭 하는 것도 아니다"며 "에이전트가 있는 종목도 얼마 안 돼서 조직적 대응이 힘들고 선수 개개인이 악플에 대응하며 에너지를 쏟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악플에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 시스템들이 비슷한 주목도를 받는 연예인에 비해 약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 취약점은 사법적 문제로도 연결된다. 악플은 형법상 모욕죄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한 범죄다. 하지만 제약이 따른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다. 모욕죄는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다. 선수 개인이 나서지 않고선 사실상 처벌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 접수 건수는 2018년 처음 1만건을 돌파한 이후 2019년 1만1380건, 지난해 1만3352건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포털사이트 스포츠 기사 댓글 폐지 이후에도 SNS 등을 통한 온라인 명예훼손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다만 선수들이 고소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노기완 법무법인 창천 변호사는 "기사 댓글창이 폐지됐지만, SNS뿐 아니라 포털 스포츠 영상 댓글창도 여전히 살아있어 악플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며 "스포츠 선수가 혼자서 악플 하나하나에 대응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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