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1인분이면 충분한가요?…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편집자주 당신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을 꺼내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장면·묘사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이미지./사진제공=더쿱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이미지./사진제공=더쿱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같이' 보단 혼자에 더 위안을 느끼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이 연출한 '혼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교류에 담을 쌓고 혼자의 삶을 살기로 한 20대 후반 직장인 진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굳이 타인과 대면하지 않아도 일상을 영위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사회. 혼자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여가를 즐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진 일상. 진아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카드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진아는 직장에선 누구보다 일을 잘하는 직원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악성 민원인도 능숙한 말솜씨로 무마하는 베테랑이죠. 그러나 일상생활에선 거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길을 걸을 때, 밥을 먹을 때도 언제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오가다 마주치는 옆집 남자가 소소하게 말을 걸어도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아요.


신입사원인 수진을 교육하는 일도 진아에겐 성가시고 귀찮은 일로 느껴집니다. 진아는 점심시간에도 혼자, 항상 가는 가게에서 늘 먹던 메뉴만 고릅니다. 어느 날 수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따라와도 진아는 마주 보고 식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앞으론 점심 먹을 때 따라오지 마요"라고 매몰차게 벽을 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아는 어떤 변화를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다음 날은 전날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일상이 반복될 뿐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가 딱히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진아가 수진이나 다른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다만 사람과 마주치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하죠.

영화는 진아가 왜 사람과의 관계를 기피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성이 진아라는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1인 가구', '혼밥', '혼술', '홀로족' 등의 키워드는 독립과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현시대의 특성을 반영하는 말들입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장소를 불문하고 24시간 타인과 연결된 세계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관계란 더이상 연연할 필요 없는 무엇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들은' 홀로족의 삶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거나 옹호만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삶이 진정 당신이 원하는 삶이냐고 되묻고 있지요. 영화는 진아의 모습을 통해서 '혼자 산다는 것'의 의미 되새기고 있습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이미지./사진제공=더쿱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이미지./사진제공=더쿱

원본보기 아이콘


평화롭던 진아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게 된 계기는 옆집 남자의 고독사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귀가한 진아는 집주인으로부터 남자가 며칠 전 홀로 사망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게다가 그가 사망한 지는 일주일이나 지났다고 하죠.


집주인은 "젊은 사람들은 서로 관심이 없어. 어떻게 그걸 몰라?"라고 말하면서도, 남자가 살던 집에 새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합니다. 진아는 꺼림칙함을 느낍니다. 남자가 죽은 것이 진아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종종 말을 걸어오던 그에게 친절히 대하지 못해 죄책감이 든 것일까요.


'죽음'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모든 관계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고, 그 끝에는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어본 적 없던 진아는 이별에 대응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진아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는 달리 엄마의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진아는 누군가 곁을 떠났을 때 느끼는 공허와 상실감이 두려워 그동안 사람과의 관계를 회피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이미지./사진제공=더쿱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이미지./사진제공=더쿱

원본보기 아이콘


영화의 끝, 옆집 남자의 물건이 치워지고 새 이웃 성훈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곧 집에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성훈은 이웃들을 불러 모아 이전에 살던 남자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고인을 애도합니다. 진아 역시 먼 발치에 서서 고인을 기리는 일에 함께합니다.


애도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느끼는 슬픔'을 의미합니다. 이는 타인의 죽음을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애도라는 과정은 그 자체로 '타인과의 연결'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도 고인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 없지만, 진아와 이웃들은 떠난 사람에 대한 슬픔에 한동안 머뭅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혼자 산다는 것'이 곧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남과 이별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나의 문제로써 느끼는 것. 영화는 관계란 그런 것이고, 이때 비로소 사람은 혼자여도 괜찮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묻고 있습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회에 늘어선 '돌아와요 한동훈' 화환 …홍준표 "특검 준비나 해라" 의사출신 당선인 이주영·한지아…"증원 초점 안돼" VS "정원 확대는 필요"

    #국내이슈

  •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수리비 불만에 아이폰 박살 낸 남성 배우…"애플 움직인 당신이 영웅" 전기톱 든 '괴짜 대통령'…SNS로 여자친구와 이별 발표

    #해외이슈

  • [포토] 세종대왕동상 봄맞이 세척 [이미지 다이어리] 짧아진 봄, 꽃놀이 대신 물놀이 [포토] 만개한 여의도 윤중로 벚꽃

    #포토PICK

  •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부르마 몰던 차, 전기모델 국내 들어온다…르노 신차라인 살펴보니 [포토] 3세대 신형 파나메라 국내 공식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전환점에 선 중동의 '그림자 전쟁'   [뉴스속 용어]조국혁신당 '사회권' 공약 [뉴스속 용어]AI 주도권 꿰찼다, ‘팹4’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