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9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무명열사'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개장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11월 19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무명열사'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개장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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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는 무명열사 1기의 신원 41년만에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신동남씨의 신원이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는 무명열사 묘지번호 4-90번 사망자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5·18조사위는 현재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 중에 5기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무명열사’의 묘비로 안장돼 있어 이 5기의 사망자에 대한 신원확인을 행방불명자의 소재 확인의 우선 조사과제로 설정했다.


사망자 검시 기록과 당시 작성된 병원의 진료기록을 확인해 행방불명보상신청서 기록과 대조, 그 대상을 특정하는 방향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9차례의 5·18진상규명 과정에서 행방불명자의 규모와 소재 확인은 암매장 사건에 국한해 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다소 조사가 정밀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5·18진상규명위원회는 단 한 사람의 행방불명자 소재를 확인하는 것이 다른 행방불명자 전체에 대한 조사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집중해 왔다.


먼저 5·18관련 행방불명자 보상신청서의 주요내용을 요약해 ‘5·18행불피해 보상신청자 전수조사 현황’을 정리하고 당시 광주에 소재했던 병원들의 진료기록과 진료비 청구서 및 진료비 청구 내역을 전수조사했다.


신원미상 5기의 사망자검시결과보고서와 비교·분석해 일차적으로 유사성을 가진 대상을 특정했다.


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는 신원미상 5기의 사망자 검시서와 행방불명신고자 중에서 나이, 신체의 특징, 사망 일시 및 장소, 사망의 원인 등을 분석하고 병원의 진료기록 중 사망자 관련 기록과 대조했다.


최종적으로 행방불명피해신청을 했다가 지난 1994년 기각결정으로 불인정된 신동남씨와 4-90번의 신원미상의 사망자가 일치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난해 11월 19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무명열사'의 유골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

지난해 11월 19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무명열사'의 유골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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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조사결과 신동남씨는 1980년 5월 20일께 기거하던 여인숙에서 나갔다가 총상을 입고 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게 됐다. 다음날 적십자병원의 간호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동거인 A씨 등이 적십자병원으로 찾아가 수술 후 복부에 붕대가 감겨 있던 신동남씨를 확인했다.


A씨는 시위에 참가한 후 이날 오후에 다시 적십자병원을 찾아 신동남과 30여 분 같이 있다가 다시 나와 시위에 참여했고 다음날 병원을 찾아가보니 신동남이 이미 사망해 영안실로 옮겨져 다른 사망자들의 시신과 함께 눕혀져 있었다.


A씨가 5월 22일 다시 영안실을 찾았을 때 시신이 없어졌으며 이는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서 시내 병원의 사망자들을 모두 도청으로 옮겨와 신원을 확인한 후 상무관에 안치하는 과정에서 함께 적십자병원에서 도청으로 옮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4-90번 신원미상의 사망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구속된 관련자 이금영의 어머니에 의해 1980년 5월 24일께 상무관에 안치돼 있다가 5일 뒤 망월시립공원묘지 제3묘원에 이금영의 이름으로 매장(당시 묘지번호 47번) 됐다.


이어 같은 해 6월 21일께 이금영씨가 상무대에 연행돼 구금된 채 생존해 있음이 확인됨에 따라 위 사망자는 신원미상으로 처리됐다.


이후 지난 2001~2002년 실시된 광주광역시의 ‘행방불명자 소재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신원미상 11기의 유해에 대한 유전자 검사 과정에서도 위 신원미상의 사망자는 다른 4기와 함께 유전자가 일치하는 가족이 없어 그대로 국립5·18민주묘지 묘지번호 4-90번에 ‘무명열사’(신원미상)로 안장됐다.


위원회는 신원미상 사망자의 광주사태변사체 검시보고(1980. 광주지방검찰청)에 기재된 부위 및 사인 부분에 ‘복부관통상 및 장파열’과 사체검안서의 ‘좌측 복부 및 중상복부에 사입구로 인정되는 총상과 정중선을 따라 20㎝의 수술흔이 인정되고 하복부는 장관이 유출돼 외부로 나와 있음’이라는 내용과 적십자병원 진료기록의 ‘간파열’ 진단명과 이에 따른 수술적 치료의 방법으로서 피부절개 유형 중 하나인 개복수술이 실시된 것으로 확인했다.


적십자병원 진료비 청구서에 첨부된 진료비 일일명세서에 1980년 5월 20~22일 처치 및 투입한 약물 등의 기록으로 신동남씨는 5월 20일에 적십자병원에 들어와 22일께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금영의 이름으로 검시가 이뤄졌다가 신원미상으로 처리된 이 시신의 검시장소가 1980년 5월 28일 상무관에서 실시됐다는 광주사태변사체검시보고서를 통해 신동남씨의 시신 이동 경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확인한 기록의 유사성과 참고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묘지번호 4-90번의 신원미상 유해의 유전자와 신동남씨의 동생에게 채혈한 혈액의 유전자를 분석해 대조한 결과 23개의 유전자좌 중에서 21개의 유전자좌가 일치했다.


이러한 수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등에서도 일치된 것으로 판단하는 기준치에 해당하며 이 검사결과를 그동안 5·18관련 피해자들의 유전자 분석 및 신원미상의 사망자 신원을 확인을 사실상 전담해 온 전남대학교 법의학교실의 확인 검수를 받았다.


이번 조사의 마지막 단계인 유전자 검사의 방법은 부계에 의한 친족관계 여부를 확인하는 Y-STR 유전자 검사와 가족관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SNP 유전자 검사를 병행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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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병행실시로 묘지번호 4-90의 유전자와 행방불명신고자 신동남씨의 유전자가 같은 아버지, 즉 부자관계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가족관계임을 확인하는 과학적 결과를 도출했다.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yjm30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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