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설경구 가슴에 닿은 정약전의 恨
영화 '자산어보' 배우 설경구, 정약전 마음 헤아리며 연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자산어보' 1946년 필사본까지 읽어
"착잡하고 복잡한 심정에 조금이나마 닿았길…"
2019년 10월 31일, 남양주종합촬영소 취화선 야외세트. 제작진 100여 명이 곳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 마지막 촬영이었다. 설경구는 누더기옷을 입은 다른 배우들과 달리 티셔츠 차림이었다. 일찌감치 촬영을 마쳐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얼굴에는 초조한 빛이 역력했다. "큰일 났어요. (변)요한이를 계속 피해 다녔는데, 아까 화장실에서 마주쳐버렸지 뭐예요. 미안해 죽겠네요."
제작진은 스승인 정약전(설경구)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떠난 창대(변요한)가 뒤늦게 돌아와 후회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변요한은 상복을 입은 이정은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굵은 눈물만 쏟아냈다. 설경구는 자기가 배우들의 감정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만치 떨어져 촬영장을 계속 힐끗거렸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배우들과 눈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아까 만난 방은진씨는 제 어깨를 잡더니 주저앉아버리지 뭐예요. 진짜 초상집인 거지. 요한이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방금 화장실에서 마주쳐버렸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후다닥 나와버렸죠. 애써 잡은 감정에 피해를 준 게 아닌지 걱정되네요."
설경구는 변요한이 이번 영화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또한 정약전 연기에 갖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의 발자취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많이 신경 써야 했다. 시나리오를 면밀하게 분석한 것은 물론 국립중앙도서관에 찾아가 ‘자산어보’ 1946년 필사본까지 읽었다. 내용에 대해 파악하기보다 국내 첫 어류 백과사전을 쓰게 된 배경과 노력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흑산도로 귀양을 떠나기 전까지 물고기에 일자무식이었던 분이잖아요. 왜 하나하나 이름까지 붙여가며 특징을 설명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당시에 정약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니었을까 싶더라고요. 위험한 생각을 가졌다고 한양에서 내쫓겨진 인물이잖아요. 자기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으니 물고기 연구에 더 매진했겠죠. 글 하나하나에 아픔이 묻어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과학 서적을 넘어 그의 인생이 담긴 책으로 느껴졌죠."
정약전의 생애는 비운으로 점철돼 있다. 동생 정약종(1760~1801)은 신유박해 때 하늘을 보며 참수당했다. 큰아들 학초(1791~1807)는 흑산도로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단명했다. 이들을 떠나보낸 슬픈 마음은 계고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구름 가 고개엔 십리가 거듭 놓였고/물결 속 배는 열흘에 세 번 부서진다네/눈 오는 날 오래도록 산음(山陰)의 약속 기다리나/돌 잔도에는 촉도(蜀道)의 근심이 길이 놓였구나."
‘자산어보’에 억눌린 감정이 나타나는 신은 전무하다. 오히려 덤덤한 표정으로 창대와 정약용(류승룡)을 위로한다. 아픈 기억이 세월의 흐름 속에 잊힌 것은 아니다. 창대와 물고기를 잡을 때도,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지낼 때도 가슴 한구석은 휑해 있다. 정약전의 마음에 맺힌 한 같은 게 설경구의 마음에도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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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마음을 헤아리며 연기한 것 같아요. 누구보다 긍정적이지만 그 또한 인간이잖아요.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과 근심이 감돌고 있었을 거예요. 그 착잡하고 복잡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닿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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