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기울어진 한국 금융, 다시 바로 세우려면
'톰소여의 모험'을 쓴 19세기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작가로 성공해서 큰돈을 모았지만 이후 벌인 사업에선 쪽박을 찼다. 그에게 은행가(banker)란 "해가 쨍쨍할 땐 우산을 빌려주지만 비가 오기 시작하면 다시 돌려달라는 사람"일 뿐이었다. 뼈아픈 경험에서 우러난 촌철살인의 풍자다.
그래서인가. 글로벌 위기로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자 언젠가부터 금융당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서민복지를 위해 "따뜻한 금융"을 표방해왔다. 취지는 좋다. 하지만 제아무리 따뜻한 금융이라도, 차입자의 신용등급과 소득에 따른 대출 금리와 한도의 합리적 차등화라는 금융원리를 외면할 순 없다. 이를 거스르면 큰 재앙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는 차입자 신용·소득을 거의 따지지 않는 저리 주택담보대출이 서민복지 차원에서 남발됐다. 당시 미국 사회는 "누구나 양질의 주거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정치적 구호에 온통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내 치솟던 집값이 2007년 중반 돌연 멈칫거리자 패닉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사태는 그렇게 왔다.
최근 고신용 전문직과 저신용 서민의 신용대출 금리가 역전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영끌'과 '빚투'로 인한 신용대출 급증세를 억제하려는 금융당국의 규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문직에만 집중된 탓이다. 당국의 자의적 개입으로 금융원리가 훼손된 일례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로 피해 본 업종 및 계층과 국민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중무장한 정치권도 문제다. 물가·금융·거시경제 안정이나 재정준칙 따위엔 아랑곳없다. 현재 국회 심의 중인 이익공유 및 손실보상과 연대기금 등에 관련된 소위 '상생 법안'들이 모두 통과되면 금융권은 각종 신설 기금에 자금을 대야 한다. 이런 여건 변화는 금융회사들의 수익전략을 왜곡시켜 결국 금융원리의 훼손과 금융질서 전반의 교란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한국은행도 본연의 책무에 반하는 손실보상용 국채 직매입 및 상생협력연대기금 출연 의무 등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금융은 금융원리의 균형추를 잃고 기울어졌다. 이대로라면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금융이 서민복지를 위한 적극적 재분배 수단으로 간주되면서 오남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금융당국은 금융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당국은 다음 두 가지 사실부터 직시해야 할 것이다.
첫째, 그동안 금융당국이 소비자보호를 기치로 적극 펼쳐 온 '서민금융'은 서민복지에 금융의 옷을 씌운 것일 뿐, 정작 '소비자보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금융소비자는 거래상대방인 금융회사에 비해 금융이해력과 교섭력이 열등한 데에다 비합리적 의사결정 성향마저 종종 보인다. 이게 소비자를 보호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 서민복지는 금융당국 아닌 재정당국(기획재정부)의 몫이라야 마땅하다.
둘째, 지난 수년간 금융당국의 정치포획이 더 심화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행 감독의 지배구조가 불량한 탓이다.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을 둘 다 관장하는 금융위는 이해상충에 취약하고, 머리(금융위)와 몸통(금감원)이 이원화된 현행 구조 하에서 감독 독립성 및 책임성은 기대난이다. 감독개편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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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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