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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IT 강국의 이타적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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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구광명학교 졸업식에는 특별한 졸업 앨범이 등장했다. 졸업생들이 3D 프린터로 만든 입체 모형으로 친구의 얼굴을 만질 수 있도록 졸업 앨범이 제작된 것이다. 특수학교인 대구광명학교 졸업생들은 모두 시각장애인이라 한 번도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졸업 앨범은 학교 선생님의 아이디어와 인근 대학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디지털마케팅 전문가인 조용민 구글코리아 매니저는 이를 두고 ‘과학기술이 제대로 쓰여 사용자 배려 관점에서 가치를 만들어낸 사례’라고 했다. 즉, 과학 기술의 ‘이타적인 쓰임’으로 이전에는 없던 가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대구광명학교 졸업 앨범이 한 선생님의 이타적인 마음과 과학기술이 만나 탄생한 결과라면, 지난해 업그레이드된 ‘소상공인 지원 시스템’은 위기 상황과 정보기술(IT)이 만들어낸 이타적인 시스템의 예다.

지난해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자 정부는 발 빠르게 금융지원 대책을 내놨다. 이 소식을 들은 소상공인들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보증기관을 찾았지만 예약이 길게 밀려 상담조차 받기 어려웠다. 보증서를 발급 받기 위해 가게 문을 닫고 새벽 마다 줄을 서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소상공인도 그들을 지원하는 기관도 애가 탔다. 정부는 신속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의 일처리는 그 약속이 무색했다. 창구는 분산돼 있었고 인력은 부족했다. 일처리는 더디기만 했다.

심사 절차에 대한 고민과 개선이 없었다. 서류를 직접 떼야했다. 똑같은 서류를 공단과 재단, 은행에 각각 내야했다. 초기에 파격적인 저금리가 대출 가수요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긴급자금 원스톱 대출 신청을 시범적으로 받기 시작한 지난해 3월에는 새벽마다 수 백 미터의 긴 줄이 등장했다. 1시간 만에 동이 난 번호표에 소상공인들의 가슴은 숯덩이가 됐다. 번호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날 다시 와서 줄을 서야 했다.

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다행인 것은 이후 빠르게 개선되고 보완됐다는 점이다. 온라인 접수가 확대되고 절차가 간소화됐다. 대출 병목을 보완하기 위해 대출기관을 분산하고 홀짝제를 도입했다. 정책자금 지원과 확인서 발급, 상담 등의 디지털·비대면 서비스를 시행했다. 소상공인들이 자금 신청을 위해 생업을 중단하고 지원센터를 직접 방문하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정부·민간과의 협업으로 최대 13종까지 내던 대출서류도 3종만 내면 되도록 대폭 축소했다. 이제는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과 관련한 상담과 평가, 대출도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시스템 변화에 대해 누군가는 일자리 감소를 걱정한다. 그렇지만 굴삭기로 한 번 뜨고 말 일을 굳이 삽을 들고 하루 종일 파야할 이유는 없다.


이타적인 쓰임은 이타적 마음 씀씀이에 기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타성에 젖어 행하는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데 굳이 이타적인 마음 씀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이타적인 마음에서 시작하지 않더라도 타인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건 많다. 효과적인 시스템이 우리 사회 전체에 이타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권한 있는 사람들이 움직인다면 훨씬 더 빠른,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도 보자면 불평은 이타적 시스템을 만드는 최고의 동기이며 아이디어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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