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무 중의 나무, 참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민초의 소리 들으며 600년…굽은 가지마다 희로애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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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마을로 이름난 경북 영주 부석사 인근 단산면에 병산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 어귀 낮은 동산 위의 아름다운 나무가 반겨 맞이하는 아늑한 마을이다.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85호인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다. '영풍'은 영주와 풍기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주시에 통합되면서 폐지됐지만 천연기념물의 고유명사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옛 땅 이름이다.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는 높이와 줄기 둘레 등 규모에서 대단한 나무가 아니다. 하지만 생김새를 보면 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마을 수호목으로 600년쯤 살아온 것으로 짐작되는 이 갈참나무의 높이는 약 15m다. 천연기념물은 물론 여느 보호수에 비해서도 작은 나무인 게 분명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15건의 갈참나무 중 20m를 넘는 갈참나무가 적지 않다. 그게 아니라도 보호수 갈참나무 대다수가 15m를 넘으니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는 작은 셈이다. 줄기 둘레는 3m 정도로 이 또한 큰 게 아니다.

이 갈참나무의 가치는 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다소곳이 서 있는 아담한 자태는 여느 노거수(老巨樹)에 비해 무척 곱고 정갈하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분위기 또한 평화롭다. 곧은 줄기가 단정히 솟아오른 뒤 비틀리고 굽으면서 주변으로 꿈틀거리며 펼친 나뭇가지들이 빚어낸 풍경은 한없이 아름답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도 나무의 표정이 크게 달라진다. 나무 주위로 넉넉하게 펼쳐진 넓은 공간을 주욱 돌아가며 바라보면 하나의 나무가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 어떻게 이토록 변화무쌍할까 감탄하게 된다.


이 나무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의 황전(黃纏)이라는 사람이 통례원(通禮院)의 봉례(奉禮)라는 벼슬을 지내던 조선 세종 8년(1426)에 심었다고 전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이를 기초로 나무의 나이가 600살 가까이 됐으리라 짐작하는 것이다.


갈참나무로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 나무 앞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동제(洞祭)가 올려진다. 이를 소홀히 하면 마을에 흉한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갈참나무라는 이름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옛 사람들은 갈참나무라는 지금의 표준식물명이 아니라 '도토리나무' 혹은 '참나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근대 식물분류학의 식물 목록에는 참나무라는 이름이 없다. 참나무는 참나뭇과에 속하는 여러 종의 나무를 통틀어 일컫는 과(科)의 이름이지 한 종의 나무만 지칭하는 식물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잎을 모두 내려놓고 줄기와 가지만으로 본색을 드러낸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의 자태.

갈잎을 모두 내려놓고 줄기와 가지만으로 본색을 드러낸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의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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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땔감으로 열매는 먹거리로
백성들의 가난한 삶 지켜온 참나무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 등
천연기념물은 고작 4그루뿐

꿈틀거리며 펼친 나뭇가지가
한없이 아름다운 자태 뽐내

참나뭇과에 속하고 도토리를 맺는 나무로는 갈참나무 등 '참나무 육형제'라 부르는 떡갈나무·신갈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졸참나무가 있다.


우리 조상은 이 나무들을 '나무 중의 나무'로 꼽았다. 한글로 표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름인 '참'을 이름에 붙여 부른 건 그 때문이다. 사실 참나뭇과의 나무만큼 우리 민족의 살림살이와 친근한 나무도 없다. 우리 기후에 잘 맞는 나무여서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랄 뿐 아니라 열매인 도토리는 좋은 먹을거리였다.


참나뭇과 나무의 이름 유래도 재미있다. 참나뭇과에서 잎이 가장 넓은 떡갈나무는 떡을 쌀 때 쓴다 해서 그리 부르게 됐다. 신갈나무는 신발 깔창으로 썼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졸참나무는 참나뭇과의 나무 가운데 가장 작은 나무라 해서 '졸병(卒兵) 참나무', 다시 말해 졸참나무라 불리게 됐다. 굴참나무는 나무 줄기 껍질에 골이 진다고 해서 '골 지는 참나무'로 불리다 굴참나무가 됐다.


임진왜란 당시 피란 생활을 하던 선조에게 올릴 식재료가 별로 없어 상수리나무 열매로 지은 요리를 자주 올렸다고 한다. 이처럼 수라상에 오르던 열매라 해서 '상수라'라고 부르다가 상수리나무로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상수리나무의 상수리는 한자어 '상실(橡實)'에서 유래했다는 게 더 정확한 듯하다. 15세기 문헌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상수리나무 열매를 상실이라고 적은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이 상실을 '굴근도토리'라고 번역한 기록이 있다. 처음에 상실로 부르다 '상술이'를 거쳐 '상수리나무'로 됐다고 보는 게 온당한 해석일 듯싶다.


워낙 친근한 나무라 참나뭇과 나무들에 대해서는 굳이 '좋아하는 나무'라고 일컫는 게 꺼려질 정도다. 참나뭇과 나무들이 오래 살기 어려웠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연 상태 그대로 뒀다면 참나뭇과 나무들은 결국 우리 숲의 천이 과정에서 극상림(極相林ㆍ해당 지역의 기후 조건에 적응해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상태를 이룬 단계)을 이뤄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참나뭇과 나무가 아닌 소나무가 우점하는 숲이 훨씬 많다.


이는 조선 시대에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이 민간인에 의해 대대적으로 벌목되는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국가 정책으로 소나무를 보호했다. 이는 물론 소나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나라에서는 땔감으로 소나무가 필요한 백성에게 '소나무 대신 참나무'를 베어가라고 권장했다. 결국 백성은 산이나 들에 흔하디 흔하던 참나무 종류의 나무들을 마구 베어 땔감으로, 열매인 도토리를 주워 먹을거리로 이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참나무 종류의 노거수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가운데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모두 20그루를 넘는다. 소나무는 27그루다. 그러나 상수리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졸참나무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참나무 종류 가운데 갈참나무 1그루, 굴참나무 3그루가 고작이다.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와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제96호),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제271호), 안동 대곡리 굴참나무(제288호)가 그것이다. 나무와 우리 문화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면 지나칠 만큼 적은 수다.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꽂아둔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서 있는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꽂아둔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서 있는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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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의 바닷가에서 마을의 풍년과 풍어를 주관하며 살아온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

울진군의 바닷가에서 마을의 풍년과 풍어를 주관하며 살아온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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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서도 참나무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10월 한국갤럽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리스트 상위 10위에 참나무 종류의 나무는 전혀 없었다. 2004년과 2014년의 같은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나무가 나무 중의 나무라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순위 10위 안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


우리 곁에서 자라는 참나무 종류의 나무 가운데 천연기념물급으로 여겨도 될 만큼 크고 오래된 아름다운 나무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졸병으로 취급해 졸참나무라고 부르지만 매우 크고 아름답게 잘 자란 졸참나무가 적지 않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매봉산 등산로 초입의 송하리 북수마을 당숲에 자리 잡은 졸참나무가 그중 하나다. 북수마을은 숲이 울창한 데다 마을 앞으로 장파천이라는 큰 개울도 흐르는 깊고 한적한 산골 마을이다.


북수마을의 수호목인 송하리 졸참나무는 규모에서 우리나라의 참나무 종류 가운데 가장 큰 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령 250년의 이 졸참나무는 높이가 20m까지 솟구쳤으며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도 3.5m에 이르는 거목이다. 게다가 졸병이라는 이름에도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호목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명실상부한 나무 중의 나무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 매우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태도 지녔다. 매봉산 등산로 초입에서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가 이룬 숲의 중심이 되는 거목이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문화재다운 가치가 충분한 나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는 인문·문화적 가치를 지닌 자연물이다. 무엇보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긴 사람살이의 역사를 품고 서 있다. 이제라도 사람살이와 나무의 관계를 더 꼼꼼히 톺아봐야 할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 우리의 가난한 삶을 지켜왔고 그래서 '나무 중의 나무, 참나무'라는 이름까지 얻은 나무들. 하나둘 우리 앞에 당당히 내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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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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