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번역가의 서재 - 애서가들의 안식처…사랑도 번역이 되나요?
일본어 번역가 박선형 대표
日 유학시절 동네책방서 재충전
"그러면서 꿈 키우게 됐던것 같다"
편한 사랑방 느낌으로 자리배치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책들 소개
이사소식에 단골이 장소 찾아줘
손님들이 이사까지 도와주기도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책을 펼쳐든 후 단어나 구절을 통해 즐거움이나 위로 또는 지혜를 얻을 수 있어서다. 색다른 매력을 찾아 보물찾기 하듯 동네 책방을 찾는 ‘독서 중독자’가 늘고 있는 이유다. 온라인에 파묻혀 책을 외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세태를 감안한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밀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형 서점 매대에는 올라가지 못한 책들을 갖춘 매력이 있어서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번역가의서재’ 역시 그런 특징이 있는 대표적인 서점으로 꼽힌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 1번 출구로 나와 8분 남짓 걷다 보면 작은 공원과 마주한 갈색 벽돌 건물에 닿는다. 벽면에 크게 난 창문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이 건물 1층에는 다양한 원서와 번역서를 갖춘 번역가의서재가 있다.
일본어 번역가인 박선형 대표는 2018년 5월5일 어린이날 서점을 열었다. 동시통역부터 강사, 출판편집자까지 여러 일을 해온 박 대표가 책방지기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아서 그런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는데, 일본에 갈 때마다 동네 책방들을 다니면서 재충전을 했다. 서점 주인들로부터 운영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그러면서 꿈을 키우게 됐던 것 같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출판 번역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하면서 서점을 열게 됐다.” 서점을 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진 듯한 인생 스토리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름을 먼저 정하고, ‘이런 사업을 만들어야지’ 하고 구상했다”면서 “동명의 책 제목이 있어 출판사에 연락해 저작권 문제가 없다는 확인도 받았다”고 꼼꼼한 성격을 드러냈다.
그는 서점 이름답게 번역서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번역가가 읽는 책이 뭘까’ 생각했을 때 번역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저도 어릴 때부터 세계문학, 번역서를 좋아해 많이 읽은 경험이 있다.” 자연스럽게 번역서 전문점을 차리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내가 잘 아는 책을 소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두루 숨어 있는 책이나 작가도 소개하고 싶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그런 콘셉트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방 곳곳에는 손님들을 배려하는 박 대표의 세심한 마음이 녹아 있는 듯하다. 책은 한눈에 들어오도록 배치했고, 편하게 책을 읽고 갈 수 있도록 책상도 마련해놓았다. 책방지기와 단둘이 있을 때도 손님이 어색함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계산대 옆 작게 마련한 공간에서 업무를 처리하곤 한다. 마음이 편안한 사랑방 같은 공간이라는 느낌은 애서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한다. 박 대표는 “서점을 방문했을 때 앉을 자리가 없고, 책이 너무 많이 쌓여 있고, 책방지기와 너무 가까우면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래서 여기에서는 여유가 되면 책을 읽고 가시라고 권해드린다. 그런 진심이 전해져 다들 편하게 들렀다 가는 공간으로 정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박 대표는 손님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된 것부터가 모두 손님들의 영향이다. 그는 “전에 있던 곳에서 조금 넓혀 이사를 하게 됐다. 당시에 단골들이 ‘멀리 가면 안 된다’라는 마음으로 ‘여기는 어떻냐’면서 매물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곤 했는데 그 마음이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어느 한 분이 지금 이곳의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전에 있던 곳과 이곳 창문이 비슷한데 여기에 로고를 그대로 넣으면 될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데 ‘여기다!’ 하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터를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저만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분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서 “이사도 손님들이 도와주셨다. 초창기부터 함께해주신 분들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매달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를 소개하는 '이달의 전시'도 이곳의 인기 요인이다. 11월에는 '그림책 공작소'의 전시가 진행된다./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원본보기 아이콘서점에서는 영미권이나 일본 외에 중동, 러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인문, 철학, 예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판매하고 있다. “묻혀 있던 보석 같은 책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큐레이션 기준에 대해서는 “‘모르는 책을 알리고 싶다’라는 게 첫째다. 잘 알려진 작가 중에서도 제가 읽었을 때 재밌던 책을 소개한다”고 말했다. 유명한 작가가 썼지만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을 올린 후 독자의 반응이 있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가 직접 읽고 큐레이션하는 책은 물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중소형 출판사를 위한 ‘이달의 전시’도 독자의 주목을 받는다. 11월에는 ‘그림책 공작소’ 전시가 한창이다. 박 대표는 “잘 알려지지 않거나 대형 출판사가 아닌 곳의 좋은 책을 알리고 싶어 이달의 전시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지방에서 찾아오는 독자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그는 “출판사에서 자식 같은 책을 얼마나 열심히 만드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1년6개월 동안 출판사 16~17곳과 함께 전시를 진행하면서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게 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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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독서 모임, 일본어 강좌, 번역가 릴레이 토크 등 각양각색의 행사도 진행한다. 12월을 앞두고 이달의 전시를 함께 진행했던 출판사들의 포스터를 모아 또 다른 전시를 여는 것도 구상 중인데, 연말에는 바자회 겸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을 진행해보려고 한다고 박 대표는 전했다. 박 대표는 “책을 매개체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남을 수 있도록 유지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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