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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프런티어]"스스로에게 관대해야 행복, 원더우먼 환상은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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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선 롯데칠성음료 디자인센터장 인터뷰
지인이 권유한 한국행, 처음엔 안내켜
2~3년 생각하고 왔다가 어느새 25년
일하는 시간 행복해야 결과도 성공적
내 역할은 옆에서 후배 기다려주는 것

진은선 롯데칠성음료 상무가 13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진은선 롯데칠성음료 상무가 13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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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롯데칠성 음료가 기업 설립 이래 처음으로 2018년 음료 패키징 부문에서 국제 디자인상을 받았다. 1950년 출시해 67년간 소비자에게 사랑을 받아온 한국 대표 탄산 브랜드 '칠성사이다'로 말이다. 사이다의 상징색인 '녹색'과 제품명 '칠성(七星)'이 시대별로 다양하게 표현된 빈티지 패키지 디자인은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다음 해 롯데칠성 음료는 '요랄라 요구르트맛 스파클링'과 '델몬트주스 소병' 제품으로도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패키징 디자인 부문에서 본상인 위너로 선정됐다. 롯데칠성 음료가 디자인센터를 설립한 후 1년 만의 성과다. 디자인센터를 진두지휘하는 진은선 센터장(50)을 만났다.


"지금 일이 즐겁나요? 그러면 뒤돌아보지 마세요."

진 센터장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25년간 미국에서 자랐다. 삶의 터전이 미국이었기에, 당연히 그곳에서 경력을 쌓으며 일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일해보자"는 지인의 제안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그가 한국행을 권유받았을 때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솔직히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했고 안정적 생활을 포기하기 두려웠다. 하지만 줄곧 '한국'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2~3년 한국 기업 문화를 경험해보자고 결론을 내렸고, 1995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험'만 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여초 현상이 심한 디자인업계 특성상 남녀차별은 다른 직종보다 덜했지만, 미국에서 자란 진 센터장은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 센터장은 '인종' 차별에 대해선 끊임없이 고민해 자신만의 해법을 찾았지만, '성(性)' 차별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는 보수적인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고, 조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좌절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지치지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차분한 성격 덕분에 흥분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그만의 스타일대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 센터장은 "제품 용기와 라벨 디자인에 대한 기획, 설계, 제작을 주도해 나온 결과물을 소비자가 좋아해주실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면서 "디자인 업무가 재미있었고, 긍정적 성과가 나오면서 주변의 눈빛도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복'을 줄곧 강조했다. 그는 "즐겁게 일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일하는 시간이 행복해야 결과물도 성공적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소통의 리더십 '들어주고, 기다려주기'

롯데칠성 음료는 디자인센터를 설립하기 전까진 직접 패키지 디자인을 하지 않았다. 디자인팀은 존재했지만 외부업체에 디자인을 맡기고 디자이너를 관리 감독만 했다. 롯데칠성 음료는 디자인센터를 설립하고 직접 패키징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진 센터장에게 디자인센터를 맡겼다. 진 센터장이 수장으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구성원과의 대화였다. 관리 업무만 하던 구성원에게 갑작스러운 '창작 업무'는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대화했고, 기다렸다.

진 센터장은 "구성원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면서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서로 고민하고 의견을 공유하고, 후배들이 성과를 낼 수 있을 때까지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어느 순간 성장하는 후배들을 볼 수 있다"면서 "천천히 걸어와도 된다. 나의 역할은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다려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질문하자 그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주면 된다"며 밝게 웃었다.



"원더우먼이 되려 하지 말라"

진 센터장에게도 육아와 일의 병행은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출산휴가가 2개월이었다. 2개월 만에 복직 후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울기도 많이 울었단다. 진 센터장은 "원더우먼 환상을 버렸으면 좋겠다"면서 "세상은 원더우먼을 요구하지만,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고 만다"고 언급했다. 이어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행복하다"면서 "힘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가족과 친구에게 마음 한쪽을 내주고 여유를 가져라"고 강조했다.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워킹맘'에게 진 센터장은 부모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라고 했다.


진 센터장은 "아이가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서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해주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진 센터장은 아이를 키우면서 "한국의 교육환경"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보다 '어느' 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가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웠다"면서 "장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한 다음 긴 목표를 갖고 정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아이들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진은선 센터장의 멘토는

진은선 롯데칠성음료 디자인센터장은 '인생멘토' 이경선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사진)를 1989년 미국 뉴욕의 사립 미술대학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 재학 시절 만났다. 당시 이 교수는 한국에서 전공한 경영학을 뒤로 하고 '디자인 산업'에 새롭게 도전하기 위해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만난 두 사람은 30년 넘게 인연을 맺었다. 이 교수는 진 센터장에게 한국 기업으로의 이직을 권유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20, 30년 일하게 될 텐데, 잠깐은 색다른 경험을 해도 된다"면서 "이 경험이 나중에는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진 센터장은 이 교수를 따라 한국에 왔고, 대기업 여성 임원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진 센터장은 "그때 이 교수님이 했던 조언이 일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진 센터장은 지금도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는 항상 이 교수에게 자문을 한다. 그는 "회사를 떠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지금 당장 1~2년이 인생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지 않는다"면서 "쉬었다 다시 걸어도 되니까 중도에 멈추지 말라"고 조언했다.


진 센터장은 이 교수에 대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공부하며 세상에 빛을 위해 노력한다. 이 교수는 한경대학교에서 산업을 독자적으로 주도할 '창의 디자이너'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기간이 평균 5년이 되지 않는 것은 디자인 교육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것. 경영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요구하는 것만 하는 종속적인 디자이너에 머물고 있다고 이 교수는 분석한다. 이에 이 교수는 디자이너를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것부터 유통판매를 할 수 있는 주체로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으로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디자인 가치창출 교육도 진행한다.


진 센터장은 "디자인센터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후배 디자이너 양성이 중요하다"면서 "후배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선배로 남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뢰를 쌓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은선 롯데칠성음료 디자인센터장 프로필]


▲1993 AMKO 애드버타이징 Inc. ▲1995 제일기획 제작본부 디자이너 ▲2002 여백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2008 샘표식품 디자인팀 팀장 ▲2014 롯데칠성 음료 디자인부문 1담당 매니저 ▲2017 롯데칠성 음료 디자인센터 센터장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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