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신문사의 문학 담당 기자들은 그야말로 당황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미국의 한 조용한 시인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루이즈 글릭. 시인은 소식을 알리는 전화에 이른 아침이라 커피를 마셔야 하기에 '2분 정도'의 시간이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수상 소감을 완벽하게 준비한 자에게 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시를 전공했기에 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 전후하여 기자들의 전화를 받곤 하는 필자는 그 날 저녁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많이 받았다. 골목에서 뛰어 돌아와 루이즈 글릭이라는 시인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야 했는데 놀라움과 반가움이 같이 밀려왔다.
시인은 어릴 때부터 시를 쓰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고등학교 때 섭식 장애를 앓고 이를 극복하느라 7년 정도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다. 대학을 제대로 졸업하지도 못했다. 예민한 시기를 힘겹게 보낸 자신의 고통과 상실의 경험을 자연과 신화 등에 비추어 인간 보편의 경험으로 녹여낸 시를 썼다. 글릭은 미국 내에서 상을 많이 타긴 했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거나 비평가들의 주목을 많이 끈 시인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시인인 셈이다. 여성임을 유난히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후 24년만의 여성 시인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걸 생각하면, 시도 여성도 문학 장 안팎에서 소외된 현실이 실감난다.
노벨상이 발표되고 난 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당황했다. 이 시인의 시를 번역한 시집이 국내에 한 권도 없어서다. 고작 한두 편 책 속에서 소개된 것이 전부다. 노벨상 발표 이후 그간 독서노트에 보관해 두었던 번역시를 한두 편 SNS에 올리니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우리는 왜 이 시인의 번역시집을 아직 한 권도 갖지 못한 것일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번역 시장에서 동시대 현대 시인들에게 기울이는 관심이 저조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문학, 그 중에서도 시는 아주 협소한 자리를 차지한다. 소수의 잘 팔리는 인기 작가와 인기 장르를 중심으로 문학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시 번역은 저작권 계약에서부터 번역자 선택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판도를 계산해야 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과 대면해야 한다. 시는 현실과 유리된 난해한 장르라는 오해 또한 빈번하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시는 고통을 통과하고 인내한 후에 맺는 언어의 결정체, 개인의 특이성이 인간 경험의 보편성과 만나는 열매다. 이를 우리는 더 자주 호흡할 필요가 있다. 번역을 통해 우리시를 내보내고, 번역을 통해 밖의 시를 들여오는 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한 시에서 글릭은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나는 말을 하지요. / 산산조각이 났으니까요." 붉은 꽃을 피우는 꽃양귀비의 목소리를 빌어 난분분 피어난 꽃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 마지막 구절 "I speak / because I am shattered."에 대해, "나는 말을 하지요. 산산조각이 났으니까요"라고 옮겼다. 한 남성 시인은 이를 "말하는 것이니, / 바닥에 꽃잎마다 붉게 / 흩어지고 있으니"라고 옮겼는데, 원시 "because I am shattered"의 단호하고 간결하고 처절한 느낌을 나는 우리말로도 군더더기 없이 원 리듬 그대로 살리고 싶었다. 꽃이 아픔을 딛고 피어나는 것이라면 시는 생의 신산함, 그 산산조각을 딛고서 용기 내어 발화하는 목소리다. 우리가 짧은 시에서 큰 힘을 얻는 이유다. 어려운 시절, 아픈 세계, 시와 번역이 주는 치유와 소통의 힘을 새로 생각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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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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