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아시아경제 임훈구 기자]


[임훈구의 필뮤직]죽자고 마시는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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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너무 마신다. 죽자고 마신다.

영화에 술 마시는 장면은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아마도 가장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의 주인공일 것이다. 실직한 시나리오 작가 벤(니컬러스 케이지). 극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직장도 가족도 없는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술 뿐이다. 퇴직금 몇 푼을 손에 쥔 벤은 마트에서 카트 한 가득 술을 사고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의사에게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그가 죽음을 맞이할 장소로 라스베이거스를 택한 것.

죽음을 기다리며, 아니 어쩌면 죽기 위해 술을 마시는 그에게 밤거리의 여자 세라(엘리자베스 슈)가 나타난다. 비록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신세지만 자존심만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는 벤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함께 살기 시작한 두 사람. 그러나 손만 대면 금방 부서져버릴 것 같은 그들의 삶이 평탄할리 없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자의 이상한 행동이 계속된다. 욕하고 싸우고 심지어는 집에 다른 매춘부를 끌어들이기까지 하는 벤의 모습에 세라는 절망한다.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이 대부분인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너무나 쓸쓸하며 때로는 잔인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 섣부를 희망이나 교훈 따위는 없다. 그저 술 취한 자의 넋두리와 자학이 반복될 뿐이다. 사막 위에 세워진 환락의 도시와 신기루 속에 살아가는 황량한 세상의 풍경화가 펼쳐질 뿐이다. 감독의 시선도 이들에게 공감은 하지만 애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를 찍은 마이크 피기스는 감독이며 뮤지션이다. 영화와 음악을 무심히 오가며 내키는대로 찍고 연주한다. 16밀리 카메라로 촬영하고 극장용 필름으로 확대 현상한 이 영화는 마치 재즈 뮤지션의 즉흥 세션처럼 자유분방하면서도 고독하다.


피기스 감독이 영화 ‘레옹(1994)’의 사운드트랙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를 듣고 스팅을 점찍었을까.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 적당한 허스키 보이스에 툭툭 내뱉는 듯한 무심한 창법, 난해한 가사... 이 영화의 쓸쓸함의 종지부는 스팅의 몫이다. ‘천사의 눈’ ‘나의 하나뿐인 유일한 사랑’ ‘고독한 도시’로 이어지는 스팅의 목소리와 재즈풍의 선율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PS: 드라마로 광고로 많이 패러디된 수영장 키스신을 놓치지 마시라. 물속에서 술을 마시고(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로를 탐닉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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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장 keygrip@


임훈구 기자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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