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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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에서 중역으로 재직하던 때의 일입니다. 본사 중역이 정기적으로 현장에 나와 안전관리 행사를 마치게 되면 현장소장이 미리 계획한 잘 정리된 길로 안내를 받아 현장 점검을 하던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중간에 방향을 틀어 현장 식당 주방이나 직원 숙소의 쓰레기통 속에 술병이 있는지를 점검하곤 했습니다. 현장 소장들은 질겁을 하지만 평소에 관리의 핵심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그런 행동을 했던 겁니다.


의류와 식음료 등 유통업계에서도 관행에서 벗어나 혁신을 거듭하는 사례가 적지 않더군요. 대한민국이 이만큼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 원동력이겠지요. 유통 분야는 제가 잘 모르지만, 최근 관련 기업의 지휘봉을 잡은 친구는 그런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 중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난 주 고등학교 동기 카톡방에 이석구군 소식이 떴습니다. 누군가 신문에 난 기사를 퍼나른거죠. '이석구'라는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스타벅스'라고 하면 다들 잘 아실 겁니다.


1949년생으로 저와 동갑인 이석구군(이하 '이 대표'라고 칭하겠습니다)은 조선호텔과 스타벅스 대표에 이어 이번에는 'JAJU'라는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스타벅스를 떠난 지 1년 반만에 다시 군화끈을 맨거죠. 의식주(衣食住) 분야를 다 지휘해 보는 영광스러운(?) 경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년 3월, 이 대표가 스타벅스를 키워놓고 박수를 받으며 대표 자리를 떠났을 때 저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다시 일선으로 돌아온 겁니다.


스타벅스는 2018년 매출 1조500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좀 무리지만, 저에게 익숙한 건설회사의 1조원과 커피 매출 1조원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커피 팔아서 매출 1조원을 달성하려면 도대체 어떤 영업전략이 있어야 할 지 저로서는 영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신비롭기도 하구요. 그래서 사업을 지휘한다는 게 흥미진진하고 보람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프로스포츠 분야에서 감독을 영입할 때 그 팀이 처한 환경에 맞는 분을 찾는 것처럼, 회사의 CEO도 시장환경에 적합한 사람을 선임하게 마련입니다. 이 대표는 전형적인 영업맨입니다. 군대에서라면 본부에서 참모들과 회의를 주로 하는 장군도 있고, 최전방에서 병사들과 함께 야전식사를 하면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도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대표는 전형적인 야전군 지휘관입니다.


이 대표는 사장실에 앉아 있기보다는 매장을 돌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지휘스타일은 형식에 있지 않고 실체를 꿰뚫어 보는 데 있습니다. 매장에 가서 격식을 차려(?) 지점장에게 보고 받고 직원들 등을 두드려 주고 다음 매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방과 화장실을 집중 점검했다 합니다. 직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요식업의 핵심을 아는 영업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한때 전 세계적으로 가격차별화 전략을 썼는데, 영업에 애로를 겪고 부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한국에서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크게 높이면서 커피시장을 점령했고, 심지어 매장이 입주한 건물 값을 올릴 정도로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그가 도입한 새로운 영업모델들도 성공을 거뒀는데, 다른 나라 매장에서도 그 모델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 스타벅스 CEO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이 대표의 자리는 앞쪽에 마련되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이 대표의 도전과 혁신 대상은 이제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커피시장도 만만치 않지만 라이프스타일분야도 그렇습니다. 특히 이 분야는 유행에 매우 민감하고 치열한 속도전에서 이겨야 살아 남는다고 합니다. 시장조사에서부터 디자인, 제작, 유통, 소매까지 소비자 마음읽기와 시간과의 전쟁입니다.


지금 4차산업의 격랑 속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유통분야도 엄청난 지각 변동을 겪고 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있다는 기사도 자주 보게 됩니다.


이 대표는 동창 모임에도 잘 안 나옵니다. 아니 못 나온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맡은 분야들이 발품으로 실적을 내야 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본인에게 주어진 일에 온 몸을 던지는 그의 자세 때문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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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는 매장을 돌면서 주방과 화장실을 챙겼지만, JAJU에서는 어디 가서 무엇을 챙길지 자못 궁금합니다. 야구로 말하면 JAJU는 새로 생긴 팀인데, 백전노장 이석구 감독이 앞으로 어떻게 게임을 풀어갈 지 벌써부터 흥미롭고 기대하는 바도 큽니다. 큰 목소리로 응원해 봅니다. 노병 이석구,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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