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 마지막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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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못 쉬겠어요.”(조지 플로이드, 2020년 5월 25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총엔 손 안 댔어요.” “숨을 못 쉬겠어요.” “그 사람들이 나를 놀렸어요.” “나는 암 것도 안 했어요.” “젊어서 죽기는 싫어요.” “숨을 못 쉬겠어요.” “총 없어요. 쏘지 마세요.” “제발 죽이지 마세요.” “왜 저를 따라오는 거예요?” “왜 나를 쐈어요?” “경관님, 왜 총을 꺼내든 거예요?” “당신이 나를 쐈어요. 당신이 나를 쐈어요.” “숨을 못 쉬겠어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션 벨, 2006년)


누군가가 남긴 마지막 말들을 모아 보았다.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미국 흑인들의 마지막 목소리다. 총에 맞아, 목을 짓눌려 죽은 사람들. 대개 가벼운 경범죄 혐의였다. ‘젊어서 죽기는 싫어요’(I don’t wanna die young.)라고 말한 이는 19살이었다. 총기 소지가 합법화된 나라여서 길을 걷다가도 운 나쁘면 총에 맞아 죽는다. 며칠 전에도 버클리 대학 학생 하나가 공부 후에 머리 식히려 산책 나갔다가 모르는 이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내가 사는 동네와 멀리 않은 대학가 주변.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런 곳이기에 공권력을 행하는 이들도 범죄 혐의를 가진 낯선 이와의 대면이 두렵고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자료를 보면, 비슷한 혐의라 해도 흑인들의 사망률이 월등히 높다.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 원주민들과 흑인들, 히스패닉 등에 더 집중적인 피해를 입힌 것을 보더라도, 폭력이나 병균은 사회의 약한 고리를 쉽게 부순다. 약한 이들의 부당하고 억울한 죽음과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것이 국가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인데, 지금 미국은 헤매고 있다.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로 인해 촉발된 흑인 인권 시위는 그런 점에서 오래 곪은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시인 랭스턴 휴즈는 “유예되는 꿈”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묻는데, 말라비틀어지고, 썩어 진물이 흐르다, 결국엔 “폭발하지?”라고 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이 1863년이다. 1865년 미국헌법 수정 제13조가 비준되면서 비로소 실질적인 실현의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많은 노예들이 해방을 모르고 있었다. 그해 6월 19일, ‘텍사스의 모든 노예는 이제 자유로워졌다’며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는데, 이름하여 ‘준틴스’(June Nineteenth를 줄인 말)다. 지금껏 묻혀 있던 ‘준틴스’를 제대로 기려 전미 공휴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을 기리는 콜럼버스의 날이 미연방 국경일이지만 이를 미국원주민의 날로 바꾸어 기리자는 움직임도 최근 늘고 있다. 노예로 부림을 당하고 침략자들에게 학살당한 자들이 아직도 사회의 맨 밑바닥에 있는 미국이다. 인권 운동은 그 점에서 도저히 더는 미룰 수 없는 정의와 평화의 길, 사람 사는 길을 향한 간절한 외침이다. 이대로 더는 안 된다고.

매일이 마지막인 듯 산다. 내 마지막 말은 무엇이 될까. ‘숨을 못 쉬겠어요’란 절박한 말과 함께 떠나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도 너무나 많다. 우리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외면할 뿐 ‘조지보다 더 참담한 조지’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 그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자신에게 겨누어진 총구 앞에서 그 말을 남기고 떠난 영혼을 생각하며 불의를 이기는 정의와 평화의 큰 호흡, 큰 물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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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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