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삐라'는 핑계...北은 '외부의 적'이 필요했다
[아시아경제 정완주 부국장 겸 정치부장] 하노이 북ㆍ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살얼음판을 걷던 남북 관계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북한은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평소 대북전단에 대한 불만을 품긴 했어도 작금의 상황을 초래할만한 결정적 이유는 아니라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의도한 바는 무엇일까.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올바른 진단은 제대로 된 처방을 가능케 한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인접지역 주민의 안전 등을 감안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사안이다. 이 문제에만 천착한다면 근본적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적대 관계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서로 손을 잡는다는 뜻이다. 북ㆍ미 싱가포르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남북은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뜻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 두 정상은 별도의 정상회담을 갖는 등 같은 배에 올라탔다.
배는 순항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암초를 만났다. 미국의 국내 상황 때문에 결국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탓이다. 영변 핵시설을 대가로 대북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을 노렸던 북한은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책임은 통일전선부로 넘어갔다. 반면 백두혈통을 잇는 김여정이 사실상 2인자로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김여정의 지시로 남북관계 단절의 종지부를 찍었다. 남한을 적대관계로 규정한 것이다.
북한은 대화의 끈이 필요한 미국보다는 대북제재 완화나 체제보장의 주도권이 없는 남한 정부를 타깃으로 삼았다. 남북 통신선 폐쇄 조치를 전후해 대규모 군중집회를 잇달아 열고 남한 정부에 대한 규탄에 나섰다. 북한이 위기극복을 위한 전략으로 '외부의 적'을 찾아야 했고 그 대상이 남한 정부로 귀결된 것이다.
북한이 미국 대신 남한을 외부의 적으로 돌린 이유는 명확하다. 북한은 대북제재 여파로 민생경제가 거의 파탄이 날 지경인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다. 장기전에 대비한 '자력갱생'을 외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약발'도 한계에 달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검증된 위기극복의 해법은 바로 '외부의 적'을 등장시키는 일이다.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 벨리는 군주를 위대하게 만드는 수단이 적을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명한 군주는 의도적으로 적대감을 조성해 위기를 돌파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의 단결을 고취시키고 권력유지에도 유리한 꽃놀이패를 손에 쥔 형국이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우리 정부가 할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 북한은 당분간 남측이 어떤 제안을 내놓더라도 바로 호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냉각기가 필요하지 섣부른 해법을 모색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의 조치나 이어지는 비난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일이다. 추후 상황이 급변해 대화국면으로 돌아설 경우를 대비한 물밑 작업을 조용히 진행하면 될 것이다. 마치 쫓기듯 이런저런 대책을 남발할 경우 되레 '남남분열' 의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여정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 파탄 조치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 최후의 보루로 극적인 국면전환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을 외부의 적 대상에서 일단 제외한 모양새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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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정부나 정치권은 당분간 냉각기를 갖되 분위기 반전을 위한 계기나 시점을 찾기 전까지 냉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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