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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연예인 아파트'였는데…50년 후 '똑똑', 누가 살고 있나요?(종합)

최종수정 2020.05.29 14:33 기사입력 2020.05.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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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선망의 아파트 '제2시범아파트' PD, 고위 공무원, 연예인 등 찾아
재난 위험 시설물 D급, 리모델링 예정 한 시대 풍미 역사속으로
전체 353가구 중 55가구만 거주…청년예술가 임대 등 리모델링 중

'세탁물 널지마십시요' 아파트 외부 난간에 입주민들이 빨래를 널다 보니, 설치된 팻말이다. 흰색의 페인트로 쓰인 글자가 이채롭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세탁물 널지마십시요' 아파트 외부 난간에 입주민들이 빨래를 널다 보니, 설치된 팻말이다. 흰색의 페인트로 쓰인 글자가 이채롭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허미담 기자, 강주희 인턴기자] "정말 영화 속 그 아파트랑 분위기가 똑같네요"


지난 26일 아시아경제 취재진이 마주한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있는 제2시범아파트 첫인상은 영화 속 모습과 같았다.

이 아파트는 영화 <추격자>, <친절한 금자씨>, <주먹이 운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친철한 금자씨' 주연배우 이영애 씨는 아예 극 중에서 생활하는 공간이 이 아파트다.


을씨년스러운 아파트 외관과 적막한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스릴러 영화 배경과 딱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았다. 영화 속 음울한 그 아파트는 여전히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깨지고 녹슨 상태로, 인근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1970년대 건축 양식으로 볼 수 있는 붉은 벽돌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문을 보면 흡사 '닭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풍수 좋은 남산자락에 휩싸여 말 그대로 자연과 공존하는 친환경적인 아파트임을 알 수 있다.

20~30대들에게는 인스타그램에서 특유의 분위기로 잘 알려져있고, 40~50대들에게는 고속 성장하는 한국 사회의 한 장면으로 자리하는 제2시범아파트가 올해로 준공 50년을 맞았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제2 시범아파트. 1970년대 지어진 이 아파트는 당시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제2 시범아파트. 1970년대 지어진 이 아파트는 당시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이 아파트는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선망의 대상임이 분명했다. 먼저 국내 최초로 중앙난방을 채택하고 당시로써는 고층인 10층이어서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당시 아파트가 9~10평에 공중화장실인 데 비해 이 아파트는 16.38평(실평수는 11.5평)에 개별화장실을 갖췄으니 꽤 고급 아파트에 속했다.


또한 단지 내 옥외 공간은 장을 담근 장독대의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도 하는 등 공동의 목적으로 사용,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애초 무허가건물 정비 차원에서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국공유지에 이 아파트를 올렸지만, 높은 집값에 정작 철거민들은 마음 편히 입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인근 남대문시장 상인들, 중앙정보부 직원, 경찰, 방송사 PD, 은방울 자매 등 연예인들이 입주했다. 1989년 3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가요 '아파트'의 주인공 가수 윤수일 씨도 이 아파트를 거쳐 갔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20년 5월 시범아파트는 옛 명성을 잃었지만 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덕에 스릴러 영화 촬영의 메카라는 별명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인스타그램 명소로도 불린다.


26일 오전 11시께 아파트 복도 전경. 입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은 이 복도를 마주할 때 일부 놀라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26일 오전 11시께 아파트 복도 전경. 입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은 이 복도를 마주할 때 일부 놀라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아파트 관리자에 따르면 현재 전체 353가구 중 55가구만 거주하고 298가구가 살지 않는 상태다. 사람이 없다 보니 아파트 분위기는 적막할 수밖에 없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복도, 음울한 분위기를 보이지만, 주민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주부 A(83) 씨는 "이 아파트가 원래 좀 컴컴하고, 언덕 위에 있고, 사람도 많이 없어서 기분이 안 좋은 느낌이 있다. 우리 집은 4층인데 주변엔 다 빈방이라 밤엔 좀 무섭기는 하다"라고 말하면서도 "범죄 영화 같은데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래도 영화니까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15년 정도 살았는데 실제로 범죄나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다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옛날 아파트고 어두침침하니까 좀 꺼리는 것 같다는 느낌은 있다"고 전했다.


아파트 측면에 위치한 계단. 산자락에 위치해, 계단 높이가 가파르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아파트 측면에 위치한 계단. 산자락에 위치해, 계단 높이가 가파르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아파트 경리직원으로 6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진모(51)씨는 "(아파트가) 범죄를 주제로 한 영화 촬영장소로 많이 쓰인다. 칙칙한 분위기 때문에 많이 오지 않나 싶다"면서도 "옛날에는 세련된 곳들을 주로 찍곤 했는데 요즘은 낡은 것들에 더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촬영하는 분들이 오면 이 아파트를 보고 '아름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더라. 예를 들어 페인트가 벗겨진 곳들을 보고 멋스럽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면서 "일부러 옥상 같은 곳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이 아파트가 위험해 보인다고 느낄 수 있지만, 서울시에서 나와서 이 아파트의 보수공사나 점검 등을 맨날 하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이 아파트는 안타깝게도 지난 2004년 11월19일 재난 위험 시설물 D급으로 지정됐다. 사실상 철거 판정을 받은 이 아파트는 이후 서울시와 주민들 간 보상금 등 합의 과정을 가지다 최근에는 철거가 아닌 리모델링으로 가닥을 잡았다.


10층 규모의 아파트지만, 엘리베이터는 없다. 대신 아파트 두 곳에 구름다리를 두어 6층과 7층으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10층 규모의 아파트지만, 엘리베이터는 없다. 대신 아파트 두 곳에 구름다리를 두어 6층과 7층으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또 하나 이 아파트에서의 특이한 것을 찾아보면, 10층 규모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다. 아파트 두 곳에 구름다리를 두어 6층과 7층으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구름다리를 이용하면 1층 출입구를 통해 1층과 4층 사이를, 6층 구름다리를 통해 5층과 10층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다.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주민들은 불편함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파트 인근에서 만난 윤모(72)씨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원래부터 없었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내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조용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제2시범아파트'?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1970년 4월8일 새벽 '와우 시민아파트'가 붕괴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후 당시 시장이 "앞으로 모든 아파트는 이곳을 '시범'삼아 튼튼히 지으라"고 했던 말에서 아파트 이름이 유래했다.


아파트 앞에 있는 입주민 전용 놀이터. 관리 소흘로 풀숲이 우거져 있다. 또 그네에는 곳곳에 녹이 슬어,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 됐음을 알 수 있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아파트 앞에 있는 입주민 전용 놀이터. 관리 소흘로 풀숲이 우거져 있다. 또 그네에는 곳곳에 녹이 슬어,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 됐음을 알 수 있다. 사진=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이 아파트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은 다름 아닌 놀이터다. 반세기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놀이터는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보인다.


우연히 이 놀이터를 목격했다고 밝힌 30대 직장인은 "처음에 다른 공간에 내가 온 지 알았다"면서 "놀이터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녹슬고 그랬지만, 요즘에는 이런 것 자체가 인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분위기 덕분에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인기가 좋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20대 중반 대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사진 촬영 목적으로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색다른 분위기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두운 복도가 있는 반면, 빛이 잘 들어오는 복도도 있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 나무로 만들어진 현관문이 보인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두운 복도가 있는 반면, 빛이 잘 들어오는 복도도 있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 나무로 만들어진 현관문이 보인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한편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공사)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는 현재보다 100가구가량 줄인 253가구 규모 '아트 빌리지'로 새로운 역사를 쓸 예정이다. 가구수를 줄여 확보한 공간에는 청년 예술가를 위한 공방, 작업실 등이 들어선다.


공사는 아파트의 역사적 가치 등을 보존하기 위해 재생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1~2인 가구로 구성된 청년예술인에게 200가구를 임대할 예정이다. 기존 입주민은 그대로 거주할 수 있다. 주거 공간 253가구에 대해서는 현재와 같은 전용면적 38㎡(약 11평)에 거실과 방 2개, 주방, 화장실 구조를 유지한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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