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검어진 버드나무의 속내가

궁금한 햇살은 눈만 뜨면

나무의 굴곡진 껍질을 뚫기 시작했다

그제까지는 땅 위와 맞닿은 밑동에서

하늘 중간쯤부터 휘어진 줄기를 더듬었다

어제는 늘어진 가지를 쉬지 않고 쓰다듬었다

달큰한 바람이 사방팔방에서 불었다

한쪽을 뚫으니 다른 쪽이 밀려나는지

며칠 사이 동상 걸렸던 가지들은

햇살을 두른 황금빛으로 치유되었다

오늘은 수천 가지 끝마다

돋은 꽃눈과 연둣빛 나뭇잎의 실핏줄을 핥아 준다

밤사이 따스한 호흡을 뱉으며

내일도 할 일이 생긴 나무는 기쁘다

모레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문득 햇살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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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햇살이 한 일/조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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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봄 어서 오라고 아침 일찍부터 마중하러 나간 일, 봄 마중 가는 길에 밤새 옹송그리며 토라진 민들레들 노란 까까머리 하나하나 쓰다듬어 준 일, 담벼락 아래 드문드문 앉아 있는 할미꽃들에게 공손히 찾아가 인사한 일, 이제 한창 피기 시작한 벚꽃 보라고 그늘 속에 숨어 있던 박새랑 참새랑 얼른얼른 불러오고 그런 김에 첫 나비도 피워 올린 일, 몽글몽글 서로를 껴안고 있는 개구리 알들 행여나 추울까 봐 개울물에서 한참 놀다 온 일, 매화 꽃잎들 떠난 자리마다 아쉽지 말라고 금세 새잎들 틔운 일, 오늘도 밤늦게 오실 아빠 걱정에 집 앞 목련 나무에다 새하얀 꽃 등잔들 한 이백 개 내건 일…… 참 많구나, 오늘 하루 또 햇살이 한 일.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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