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슐리외 추기경의 삼면 초상화[이미지출처=영국 내셔널갤러리 홈페이지/www.nationalgallery.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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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은 실제 역사에서는 현대 프랑스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유명하다. 어떤 순간에서나 '국익'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개인적 명예를 과감히 포기하며 전략을 움직였다. 훗날 유럽 모든 국가의 외교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슐리외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1626년 라로셸 공방전 때부터다. 라로셸은 프랑스 서부의 항구 도시로 당시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 핍박받던 신교도 위그노인들이 집단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이들은 당시 유럽 전역이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 싸우던 30년전쟁에 편승해 영국 왕 찰스 1세와 연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2년간 프랑스 정부군과 치열한 공성전을 벌였다.

1628년 라로셸의 위그노인들이 항복하자 프랑스 내 가톨릭 세력은 성내에 남은 이들을 몰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그노인들이 적국인 영국과 결탁해 반란을 일으킨 데다 국가에서 금지한 신교도라는 점에서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몰살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30년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당시 상황에서 리슐리외는 더 이상의 내전을 막아야 한다며 이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기로 결정했다.


리슐리외는 당시 루이 13세의 선왕인 앙리 4세가 신교도에게 베푼 관용 정책인 낭트칙령에 따라 이들의 믿음을 지켜준다고 약속했다. 이에 프랑스 내 가톨릭교도와 주교들이 크게 반발해 리슐리외를 이단자이자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심지어 그의 측근들조차 몰살을 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개종이라도 시킬 것을 권했으나 리슐리외는 "개종은 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하시는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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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종교적 문제에 앞서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적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프랑스는 신ㆍ구교 간 30년 가까이 이어진 내전으로 매우 피폐한 상태였다. 또 동유럽과 스페인을 동시에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 둘러싸여 대외적으로도 위험한 상태였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리슐리외는 전 유럽의 적이자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튀르크제국과도 우호 관계를 맺었다. 이로 인해 그에 대한 무수히 많은 암살 시도가 있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밀어붙였다. 이런 이력으로 대중문화에서 그는 영원히 악역으로 남게 됐지만, 프랑스는 30년전쟁의 혼란을 금방 수습하고 유럽의 강대국으로 갈 길이 열리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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