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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장르 파괴자 '봉준호'에게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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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장르 파괴자 '봉준호'에게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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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첫째,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기본인 장르조차도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고정관념일 뿐이다. "기존의 장르는 할리우드에서 정해진 것이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가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선언한다. 현실 세계는 정형화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이념으로 진영화해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점이다. 한 쪽은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장르로 나서고, 다른 쪽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좌빨세력 척결 장르로 맞선다. 지는 쪽은 사회의 적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둘째, 감독의 임무와 권리에 대해 잘 알고 그 한계를 지킨다는 점이다. "감독의 역할은 물리적 팩트와 조화로운 세계관 속으로 배우와 관객들을 정확하게 안내할 의무에 충실할 뿐"이란다. 영화는 싸구려 프로파간다의 도구가 아니기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영화 자체의 아름다움이 충만해야 한다. 보고 나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정치, 언론, 의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법조계까지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뒤에 숨어서 관객을 컨트롤하려 든다.

셋째, 이미지 속에 매몰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지가 과할 정도로 범람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이미지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력한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소견이다. 우리 사회는 남들이 의식적으로 심어 놓는 이미지에 몰입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전문가집단, 시민운동 단체, 종교집단 등에서도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다. 이미지를 심는 사람들 자신도 스스로를 재검토하고 사회적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넷째, 상대적 세계관과 인간관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기에, "많은 현상들이 슬프기도 하고 동시에 웃긴 측면"도 있단다. "순도 100%의 슬픔, 순도 100%의 기쁨으로 나눠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절대론적 세계관과 타인을 부정하는 인간관에 물들어 둘로 쪼개진 한국 사회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처럼 부조리한 코미디가 많이 발생하는 사회일수록 스스로 비판하고 창의적 문제 해결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배우 캐스팅의 유일한 기준은 "단순하게 연기 잘하는 분"이란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A4용지들과 하는 오디션에 대한 믿음보다는 수 년간의 단편 영화, 연극, 기록 등을 살핀 후 전문성에 확신을 줄 만한 연기를 한 분들을 무조건 캐스팅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인재선발 기준은 정반대다. 전문성보다는 이념동질성을 추구한다. 공무원 집단은 선출된 권력의 지배를 무한정 받아야 할 피지배 수족으로 여긴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통계청장은 경질의 대상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경고를 수차례 발표한 의사협회는 경계의 대상일 뿐이다.

심지어 국민적 쾌거가 아닐 수 없는 영화 '기생충'을 놓고서도 진보, 보수 논란이 뜨겁다. 지하방과 고급 저택, 수많은 계단들로 상징되는 빈부격차를 부각시킨 것이라 진보진영의 선전물이라는 견해도 쏟아지고 있다. 주인공이 결국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노력해 계층사다리를 올라가서 그 문제의 집을 사버리면 문제가 해결(아버지 구출)된다는 보수적 계획을 세우는 걸로 결론이 나는데도 말이다. 반지하방들이 존재하는 건 엄연한 현실인데, 이걸 감추는 게 보수란 말인가. 진영과 장르 나누기 할 때가 아니라 이 영화 제작자, 감독, 스태프, 배우들처럼 세상과 솔직하게 소통하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봉준호 감독과 그의 작품은 천국의 자리에 올라섰는데 한국정치와 사회는 진영논리의 지옥 속에서 헤매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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