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SBS '스토브리그'와 리빌딩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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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은 꽤 미래적인 숫자처럼 보인다. 만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1989)’를 비롯한 여러 공상과학(SF) 작품이 새로운 미래의 원년처럼 묘사한 영향 때문일 것이다. 원대한 상상력이 허망하게도 2020년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일상화한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TV에서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반영된, 그럼에도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 한 편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SBS의 ‘스토브리그’ 얘기다.


프로야구계의 만년 꼴찌팀 드림즈의 오프 시즌 이야기가 그려진 ‘스토브리그’는 여러모로 한국 드라마의 진부한 관습을 깬 수작이다. 우선 선수들 사이의 뻔한 라이벌 구도와 승패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 스포츠 드라마의 전형적인 플롯에서 벗어나 야구 세계를 프런트 중심의 오피스 드라마로 풀어낸 신선한 관점이 돋보인다. 남녀 주인공의 러브 라인 같은 편리한 극적 장치에 기대기보다 직업 세계에 대한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현실감 넘치는 재현도 주목거리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시대정신과 드라마가 만나는 지점이다. 말하자면 '리빌딩 판타지'다. 프로야구에서 리빌딩이란 팀의 체질 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으로 새롭게 재건한다는 뜻이다. 흔히 하위권 팀이나 노후된 팀에서 시도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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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낡은 질서의 청산ㆍ혁신에 대한 열망이 이런 리빌딩의 욕구와 닮았다. 그동안 성과지상주의에 매몰돼온 스포츠계에서 리빌딩이 제대로 실현되기란 어려웠다. 우리 사회 역시 많은 개혁의 좌절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다.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함께 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스토브리그’에서 리빌딩을 주도하는 인물은 드림즈의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다. 그는 씨름단, 하키팀, 핸드볼팀의 단장을 거치면서 맡았던 팀을 모두 우승시킨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사실 초인적인 리더 한 사람이 허약한 공동체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시켜 피땀 어린 결실로 이어지게 만드는 이야기는 과거 개발시대의 지배적 판타지였다. 대표적인 예가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1983)’이다.


초인 판타지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영웅적인 리더 한 사람의 활약으로 바뀌지 않는다. 근본적인 구조 변화, 리빌딩이 필요한 시대다. ‘스토브리그’의 백승수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리더다.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과 경력만 보면 성과지상주의자인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능력은 허약한 조직을 ‘강팀’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단지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뛰어난 선수들만 많이 영입하면 된다. 그러나 강팀이 되려면 조직의 근본 체질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 개인을 한 사람 한 사람 뜯어보면 나름대로 능력이 갖춰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 타성에 젖어 서서히 썩어들어간 조직이 바로 드림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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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하자마자 문제점을 간파한 백승수는 시스템 개혁에 나선다. 불합리한 지시에 저항하고 낡은 통념과 관성은 거부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하루빨리 과거의 모습은 잊고, 새로운 발전적인 모습을 찾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합리적인 근거와 냉철한 분석으로 구성원들을 설득한다.


‘스토브리그’는 드림즈의 환골탈태를 백승수의 원맨 리더십 쇼가 아닌 서로 합이 맞춰지는 구성원 전체의 팀플레이로 묘사해나간다. ‘스토브리그’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우리 시대의 리빌딩 판타지를 대변한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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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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