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금은 여러 뜻이다 물금은 교복을 벗어던진 해안 도시 미성년의 어깨쯤에도 있고 실제로 고장 난 채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상체에도 나 있다 역에 도착하자 바다는 없다고 하고, 금하는 것도 없다고 한다 나는 잘못 알아들었다 금하지 않아도 금하는 저녁의 불빛들이 켜지고 마음의 한쪽 내부에선 다 저지르고서도 금하는 표정을 물금역의 사월 벚꽃 아래에 가서야 혼잣말로 놓아주었다 어떤 표정은 역(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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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물금역(勿禁驛)/성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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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과 금은 여러 뜻"이긴 하지만, 그 둘을 묶은 '물금'은 대체로 '금하지 아니하다' 혹은 '금하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다. '금지'는 욕망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는 희한하게도 그것을 어기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맥락에서 '물금'이라는 말은 참 묘하다. 금지하는 것이 없다면 즉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욕망은 애초부터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금역엔 바다가 없다'라는 문장은 실제 사실을 적은 것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이런 상황을 빗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라워라. 욕망은 그런 '물금역'에서도 자신의 숙주를 만들어 낸다. 오인("나는 잘못 알아들었다")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요컨대 금지하지 않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그 금지를 "금하는 저녁의 불빛들"을 창출한다. 욕망은 금지를 모른다. 이 말은 정확히 그 반대를 포함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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